| 제목: 산재사고에 임금체불까지 |
● 'FUCK ME'
성 명애(자원활동가/공인노무사)
가나의 축구선수였던 아담이 한국에 온 것은 삼성축구단에 입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삼성측의 터무니없는 계약조건으로 아담은 입단을 포기하였고, 돌아갈 비행기티켓값이 여의치 않아 그대로 한국에 눌러 살게 되었다.
일산에 있는 작은 공장에서 취업하였던 아담은 그곳에서 임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의정부에 있는 달력을 고정시키는 작업을 하는 공장으로 옮겨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종장에서 아담은 임금체불과 함께 산재까지 당하게 되었다.
아담은 달력을 고정하는 작업 중 왼손 4손가락이 모두 프레스기에 눌려 뼈가 으스러지는 부상을 입었고 근처의 작은 의원에 가서 깁스를 하였다. 그런데 사장은 3일치의 치료비만을 부담하고 그 이후에는 일체의 치료비를 지급하지 않았고 아담은 물리치료를 계속 받아야 함에도 돈이 없어 병원에 다닐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이런 상태에서 아담은 우리 상담소를 찾아왔다.
아담은 당장 생계를 위해서 임금도 받아야 했고 병원의 치료도 받아야 했다. 나는 임금체불이 된 첫번째 사업장과 아담이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원이 가까이 있는 점을 염두에 두고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해보기로 하였다.
먼저, 임금체불이 되었던 첫 번째 공장의 사업주와 접촉했다. 사업주는 아담을 고용한 적도 없다며 발뺌을 하였다. 두어 번 접촉하였지만 체불임금을 지급할 의사가 전혀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노동부에 진정을 해야할 사안이었지만 아담의 사정이 워낙 급한지라 한번만 더 접촉해보기로 하고 이번에는 아담과 함께 의정부 가리비에 있는 공장에 직접 방문하기로 하였다. 사업주는 아담과 자원활동가가 공장을 찾아가자 그제서야 아담의 고용사실을 인정하고 보름 뒤에 임금을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사업주로부터 임금지급 약속을 받아낸 후 아담이 피재 직후 수술을 받았던 병원을 방문하였다. 병원장을 만나 아담의 현재 상태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병원장은 오른쪽 둘째 손가락과 다섯째 손가락은 부상정도가 가벼워 완치가 가능하나 셋째, 네째 손가락은 장기간 치료를 요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축구는 계속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적인 얘기도 들었다. 아담의 사고에 대해 설명을 들은 후, 자원활동가는 병원장에게 아담이 현재 처해 있는 딱한 사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아담의 사고가 산재승인이 날 때까지 무료로 치료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하였다. 병원에서는 다행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일단 한 시름 놓을 수 있게 된 셈이었다.
다음은 아담의 산재승인을 받기 위한 절차가 필요했다. 아담이 사고를 당했던 공장의 사업주와 접촉한 결과, 사업주는 아담의 치료비를 낼 수 없으며 산재신청을 하던지 맘대로 하라는 식의 반응이었다. 나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산재승인과 임금체불이 같이 걸려있는 사안인데, 만약 산재승인절차를 먼저 밟는다면 사업주는 체불임금지급을 지연할 것이 뻔했다. 어느 쪽을 먼저 하는 것이 좋을 것인가. 생각 끝에 아담의 치료는 산재승인이 날 때까지 무료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감안해서 사업주에게 임금지급 약속을 받아내는 것을 먼저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사업주에게는 더 이상 치료비 얘기는 하지 않고 체불된 임금에 대해 지급을 요구했다. 사업주는 치료비 얘기를 하지 않은데 안심한 탓인지 약속한 기일에 임금을 지급하였다. 그 사이 첫 번째로 임금이 체불되었던 공장에서도 임금을 지급하였다. 밀린 임금을 모두 받은 후 산재승인절차를 진행하였다.
사업주로부터 산재승인에 대한 협조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인지라 근로복지공단에진정서를 제출했다. 알고 봤더니 그 공장은 아예 산재보험에 가입조차 되어 있지 않았다. 이런 경우 사업장을 먼저 산재보험에 가입시켜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오래 걸리기 마련이었다.
아담에게 상황을 설명해주고 시긴이 걸릴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이었다. 아담은 체불임금을 모두 받긴 했지만 그 동안 밀린 방세를 모두 지급하고 나니 수중의 돈이 얼마 남지 않은데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서울에서 의정부에 있는 병원까지 다닐 교통비가 만만찮아(매일 5,000원 가량) 더 이상 병원에 다니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아직 산재승인이 떨어진 상태가 아닌지라 아담의 거주지에 가까이 소재한 병원으로의 전원신청은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치료를 받지 않는 상태로 둘 수는 더더욱 없었다.
나는 또 고민에 빠졌다.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담이 병원을 옮기는 것이었다. 현재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에 아담이 거주지를 의정부 병원근처로 옮겨야 할 이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한번 부딪혀보자'는 생각에 아담이 치료를 받고 있는 병원으로 연락하였다. 아담의 현재 사정을 설명하고 미리 전원신청서를 작성해줄 것을 부탁하면서 전원할 병원은 빈칸으로 남겨달라고 했다. 다행히도 병원에서는 흔쾌히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였다. 이제 남은 일은 아담이 옮길 병원을 찾는 일이었다. 어차피 아담은 치료비를 내지 못할 형편이니 아담의 산재승인이 나기 전까지 무료로 치료해줄 병원을 찾아야 했다.
나는 아담이 거주하는 근처 병원의 전화번호를 수소문하였다. 아담의 물리치료를 해줄 수 있는 정형외과를 8곳 정도 연락해 보았으나 모두 산재인정 전에 무료치료는 해줄 수 없다고 하였다. 병원측으로서는 당연한 반응이겠으나 힘이 빠졌다. 포기하는 마음으로 마지막으로 한 정형외과에 부탁을 했더니 그 병원에서는 다행히도 한 번 방문해 달라고 하였다. 믿을 곳은 그 병원밖에 없었다. 나는 즉시 아담에게 연락하였고 다음날 같이 그 정형외과로 갔다.
병원장과 면담을 시작하였다. 병원장은 일단은 외국인 이주노동자에 대해 선의에서 우러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런데도 면담 내내 병원장은 망설였다. 만약에 아담의 부상에 대해 산재승인이 나지 않으면 그 치료비는 누가 부담할 것인가였다. 병원장의 우려는 당연한 것이었다. 나는 아담의 사고는 직업성 재해가 아니라 사고성 재해이므로 산재승인은 확실하게 날 것이라는 점을 계속 강조하였다. 그럼에도 병원장은 계속 망설였다. 면담중에 병원장은 '일단 찾아온 환자이니 치료를 우선 해야 한다'면서 아담의 x-ray 사진을 찍고 물리치료를 받도록 해주었다. 그런데 치료 중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 아담의 x-ray 사진을 본 병원장의 말인즉, 아담의 넷째 손가락은 아직 뼈가 붙지 않은 상태인데 앞으로 그대로 고정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다. 일이 처음에 찾아가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 x-ray 사진을 정면으로 한 장만 찍어 넷째 손가락의 상태를 알지 못한 듯했다. 원래 x-ray는 정면, 측면, 45도 각도로 해서 2~3장정도 찍어야 하는데 그 병원에서는 정면사진만 찍었던 것이다. 사진을 측면방향으로 찍어보았더라면 넷째 손가락의 뼈가 부러진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나 이미 늦어버린 상태였다. 그 뼈가 붙기 위해서는 사고 후 14일 정도 이내에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것이 병원장의 설명이었다.
아담의 치료를 포함해서 무려 3시간여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병원장은 아담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고 물리치료도 받게 해주는 등의 친절을 베풀어주었으나 여전히 망설였다. 병원장이 망설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예전에도 선의를 가지고 환자를 도와주었다가 일이 여의치 않게 되는 바람에 몹시 애를 먹은 적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아주 재미있는 표현을 했다. 그는 '자신은 운이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의 말을 받아 '나는 lucky woman'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아담의 산재승인은 반드시 받을 수 있으니 염려하지 마실 것을 당부하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상담소에서 치료비에 대한 보증을 서겠노라고 약속했다. 마침내 병원장은 상담소를 믿고 산재승인이 날 때까지 아담의 치료를 무료로 해주기로 약속했다. 병원으로서는 쉽지 않은 결정을 해준 것이다.
아담은 병원장과 내가 면담하는 중에도, x-ray 사진을 찍는 중에도 계속 월드컵친선축구 중계를 보고 있었다. 내가 면담을 마치고 나오자 병원에 있는 스포츠신문을 보면서 가나에서 함께 뛰었던 동료가 다른 나라의 용병으로 갔는데 신문에 나왔다며 자신의 일인양 자랑하며 한편 부러워했다. 친구의 일로 기뻐하는 아담을 보노라니 병원장을 통해 알게 된 새로운 사실(넷째 손가락의 뼈가 영원히 붙지 않을 것이라는)을 설명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그가 축구를 계속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나를 더 괴롭게 했다. 주저하면서 어렵사리 아담에게 설명해주었다. 그러나 아담은 '축구는 발로 하니까요'라며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으면서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었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다.
아담은 전원이 예정되어 있는 병원에서 계속 치료를 받고 있었고 산재인정도 곧 날 것이라는 기대로 힘든 생활이지만 열심히 작은 고무공으로 손가락 운동과 축구연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근로복지공단의 담당자에게 연락이 왔다. 사업주는 아담이 일하다가 프레스에 다친 것이 아니고 공장에 있는 여자친구와 장난하다가 다쳤다고 했다며 사실확인을 요청했다. 물론 담당자는 사업주가 핑계를 대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처음 접촉했을 때는 아무런 말이 없었던 사업주가 뒤늦게 얼토당토 않은 핑계를 대고 있는 것이다. 마침 아담이 병원에 갔다가 오는 길에 상담소에 들렀기에 사업주의 말을 전해주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사업주가 그런 핑계를 대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사고 당시의 상황을 다시 한번 상세히 설명해 줄 것을 부탁했다.
아담은 사장이 치료비를 나 몰라라 하는 것도 억울한데 자신의 사고에 대하여 그런 식으로 매도하는 것에 처음에는 분노했다. 그러더니 이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비탄을 토로했다. 말끝에 갑자기 그가 외쳤다.
'FUCK ME, FUCK ME....'
만약 아담이 이 상황에서 홀로 있었다면 그는 자신의 머리칼을 쥐어뜯고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이나 벽을 마구 쳤을 것이다. 'FUCK ME..'를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충분히 그런 그의 모습이 상상이 되었다. 그는 돌아갔지만 그가 외치던 FUCK ME는 오랫동안 나의 귓가를 맴돌았다.
FUCK ME......FUCK ME...FUCK ME...FUCK ME...FUCK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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