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동일 사업장에서 두번이나 산재를 당한 사례 |
● 두 번 연거푸 산재를 당했던 헥토르씨
외국인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상담국장 김 지연
필리핀 국적의 헥토르씨는 2000년 5월 우리 상담소에 찾아왔다. 퇴사전 2개월동안 밀린 월급과 50시간에 해당하는 잔업수당, 그리고 끝이 조금 잘려나간 왼쪽 손가락에 대한 보상금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의 한달 월급은 650,000원. 오전 8 : 30에 일을 시작해서 오후 5 : 30이 되면 집에 돌아가 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겠지만 일주일에 3일은 오후 6시부터 9시까지 의무적으로 잔업을 해야했다. 거기에바쁘면 9시 이후에도 그의 잔업은 계속된다.
헥토르씨가 사고를 당한 날은 3월 31일. 그날 오후 5시경 프레스 기계 작업도중 그의 왼손 엄지의 손톱이 절단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그는 2월부터 임금이 체불되었으며, 사장님이 병원비는 지불했지만 보상금은 커녕 월급도 주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잘린 손가락은 왼손만이 아니었다. 1999년 8월, 헥토르씨가 처음 그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밤샘 작업 도중 졸음을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 프레스기에 손이 들어가는 바람에 오른손 두 번째 손가락 첫 번째 마디도 잘려나가버렸다. 사고가 일어났던 시간은 새벽 3시. 모두가 잠들어 있는 그 밤에 그는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다른 한 손으로 움켜쥐고 병원에 가서 자신의 손가락을 절단하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후 10일동안 통원치료 받았고 치료가 끝나자마자 사장님은 그를 공장으로 데리고 가서 다시 일을 시켰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산재신청을 해서 잘려나간 두 손가락 모두 보상금을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다행히도 헥토르씨의 체불임금 문제는 관할지방노동사무소에서 전액 수령함으로써 해결되었다. 그러나 산재문제는 그리 간단치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에 진정서를 제출하였으나 조사결과 둘다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사고에 대한 기록이 없다는 것이었다. 이상하다... 왜 챠트가 없다는 거지? 당시 <외국인노동자 인권을 위한 모임>에서 자원활동을 하고 있던 나는 영문도 모른채 헥토르씨와 함께 병원으로 갔다.
헥토르씨의 사고 날짜를 말해주었지만 병원 원무과 과장은 모니터를 직접 보여주며 기록이 없다고 했다.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은게 분명한데 그냥 포기할 수도 없고 해서 나와 헥토르씨는 병원 벤치에 앉아 그때 수술을 해주었던 담당 의사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겨우 담당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헥토르씨를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사고가 있던 날 사업장에서 한국인 동료가 헥토르씨를 데리고 왔고 헥토르씨가 외국인이어서 의료보험카드가 없기 때문에 아마 그 사람의 의료보험카드로 대신 작성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장에 가서 그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알아오면 서류를 작성해주겠다고 했다. 우리는 고맙다는 말을 연신 되풀이하며 공장으로 향했다.
공장의 분위기가 살벌했다. 사장은 상대도 하기 싫다는 듯이 그랜저 승용차를 닦고 있고 사장의 친구라는 사람은 손가락 좀 잘려나간 거 가지고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야단법석을 떠냐고 거의 사람을 죽이기로 작정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는가? 헥토르씨를 병원에 데려간 사람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가르쳐달라고 애원하는 수밖에. 우리가 포기할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자 사장도 할 수 없다는 듯 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사장의 동생이었다.
처음 병원에 갔을 때 친절하게 대해주던 원무과장은 태도가 돌변했다. 다른 사람 이름으로 기록을 작성했다는 걸 근로복지공단 조사과에서 알게 되면 병원은 72일 영업정지를 당한다며 장해진단서를 발급해줄 수 없다고 딱 잘라 거절했다. 그러면서 헥토르씨가 근무했던 사업장의 비리를 술술 말하기 시작했다. 그 병원에서 산재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둥, 봉합수술을 할 수 있는 사람까지 사장이 돈이 없다며 그냥 손가락을 잘라버리라고 했다는 둥...나는 기가 막혔다. 사고당한 사람은 헥토르씨인데 다른 사람 의료보험카드로 기록을 작성하면 헥토르씨가 아무 보상도 받을 수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당신들이 그 사장과 뭐가 다르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는 아무말도 하지 못한 채 그냥 헥토르씨와 함께 병원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병원을 나오자 벌써 시간이 한참 지나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 금방 끝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날 오전 모란역에서 만나 하루종일 병원과 공장을 왔다갔다 하면서 우리가 알아낸거라곤 헥토르씨의 잘려나간 오른쪽 손가락은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뿐이었다. 난 그러면 안되는 걸 알면서도 헥토르씨에게 화를 내고 말았다. 왜 처음에 사고났을 때 우리한테 오지 않았냐고, 사장한테 화가 나지도 않았냐고. 헥토르씨는 힘없이 말했다. '저도 그때 마음이 아팠어요.' 난 더 이상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부소장님께 헥토르씨에 대한 상황을 보고드리고 함께 자원활동을 하는 노무사님들과 회의 끝에 헥토르씨의 산재를 정식으로 근로복지공단에 진정할 것을 결정했다. 그리고 근로복지공단 성남지사에서 헥토르씨의 2번의 재해에 대하여 사업장을 조사 확인한 결과 업무상재해에 해당하니 장해보상청구서 등 민원서류를 제출하라는 회신을 받았다. 부소장님께서는 원진녹색병원 원무과장님께 직접 연락하여 헥토르씨가 1차장해에 대한 진단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헥토르씨는 두 손가락 모두 보상금을 받았고, 결국 우린 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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