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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상담사례

번호 : 34
글쓴날 : 2003-07-07 14:23:40
글쓴이 : 노동인권회관 조회 : 3733
제목: 산재발생후 3년이 지난 경우

● 모험을 해보았더라면
한 분수(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 위한 모임 상담국장)

켈리는 나이지리아 사람으로 올해 서른 일곱 살이다. 1997년에 한국에 왔다고 하는데 한국말을 거의 못한다. 그는 1999년 2월 일산에 있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왼손 둘째손가락을 다쳤다. 그 사고로 일산에 있는 병원에서 피부를 이식하는 수술을 했는데 치료비는 사장과 켈리가 반반씩 부담했다. 수술이후 켈리는 그 회사를 나와 다른 공장에서 일을 했고 그 회사도 평택으로 이전하였다.
수술이후 별 후유증이 없을 줄 알았던 켈리는 시간이 갈수록 다친 손가락이 검게 변색되면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당시 수술을 했던 병원을 찾아가 물어보았으나 병원에서는 별 뾰족한 답변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에도 통증은 여전했고, 그러던 중 켈리는 우연히 가벼운 교통사고를 당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운영하는 일산병원을 가게 되었다.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켈리는 그곳 의사에게 손가락을 보이고 통증을 호소하였다. 의사는 성형외과 검사를 받게 하였고, 결과는 애초 수술시 손바닥이 아닌 다른 곳의 피부를 이식했기 때문에 부작용이 생긴 것이고 재수술을 하면 괜찮아진다는 진단을 내렸다. 그러나 수술비가 문제였다. 돈이 없었던 그는 물어물어 인권모임을 찾아와 도움을 청했다. 올 6월이었다.
내가 회사의 인적사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았지만 켈리는 이전한 평택공장의 전화번호만을 알고 있었다. 나와 같이 공장에 찾아갈 수 있겠느냐고 물어보았지만 공장을 찾아갈 수도 없다고 했다. 회사에 대해 아무 것도 알지 못한 상태였지만 일단 그의 사고가 지금이라도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근로복지공단에 문의하였더니 3년이 지난 사안이긴 하지만 최초 요양신청서를 낼 수는 있다, 그러나 사고 당시 사업주와 켈리가 합의하여 처리했기 때문에 면밀한 조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답변하였다. 근로복지공단의 답변을 들은 후 자원활동을 하는 공인노무사와 산재적용이 가능한지를 논의하였다. 결론은 그다지 희망적이지는 않았다. 3년이 지났고, 당시 5인 이상 사업장이었다는 것을 증명하기가 만만치 않았고, 사고 당시 서로 합의하였고, 3년이 지나 재수술, 그것도 성형수술에 해당하는 수술을 한다는 사실이 불리할 수 있고, 사업주가 결코 협조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 등이 논의되었다.
공인노무사와 소장님과 여러 각도로 논의한 끝에 일단 현재 필요한 치료비를 사업주로부터 받도록 하고 사업주가 거절할 경우 산재적용이 거부당할 우려가 있긴 하지만 산재신청을 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그 사이, 켈리는 손가락이 많이 아픈지 어떻게 됐느냐고 하루걸러 전화를 걸어왔다.
평택 공장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그를 기억하는 직원은 없는 듯했다. 사업주와 직접 통화가 필요한데 사업주와의 통화가 쉽지 않았다. 몇 차례 공장으로 전화를 하고 상황을 설명하고 사업주와 반드시 통화해야 한다고 설득하는 등 갖은 수를 다 쓴 끝에 다행히 공장의 주소, 위치, 사업주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를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켈리가 수술하고자 하는 병원으로 전화하여 수술비 내역을 상세히 알아보았다. 수술비만 80만원. 입원비까지 합하면 약 150만 원의 내역이 나왔다. 이후 사업주의 휴대전화로 연락을 시도해 보았다. 여섯 번만에 간신히 통화가 되었다. 사업주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켈리 잘 안다. 사고가 있었던 것도 안다. 손가락 사고 때문에 우리 회사에 일거리가 없었는데도 평택으로 이사올 때도 데리고 와서 치료 더 해주고 완치된 다음에 그만두었다. 무슨 소리냐, 3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다른 사고가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 아니냐. 나는 외국인도 인격적으로 대해 왔다. 수술한 후 완치돼서 나간 사람이 3년 후에 재발했다는 것이 납득이 안 간다."
일단 사업주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마음을 누그러뜨린 후 처음 수술과정에 대한 설명과 수술이 필요한 이유, 수술비 등을 차분히 설명했다. 통화를 하면서 그리 적대적이지 않고 편안히 웃으면서 얘기하는 사장에게 약간의 기대를 가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속단이 켈리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상을 덜 받게 만드는 실수였음을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통화가 거의 끝나갈 즈음, 사장은 사고 당시 담당직원에게 상세히 얘기를 들어보고 더 생각해 본 후 전화를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열흘이 지나도록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휴대전화에 수없이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공장에 전화하면 외근중이다, 손님과 상담중이다, 도무지 연락두절이었다. 고의적으로 회피하는 것 같았다.
사업주와의 연락을 시도하는 한편, 병원 원무과에 치료비 감면, 병원 사회사업팀에 켈리에 대한 지원 등을 알아보았으나 모두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답변뿐이었다. 게다가 병원측에서는 켈리가 입원시 한국인 보증인을 세워야 하고 보증인이 없으면 입원, 수술비를 보증금으로 예치해야 한다고 했다. 예약까지 받아놓고 이제와서 외국인이라고 보증인, 보증금을 요구하는 사실의 부당함을 병원측에 항의하였으나 개인이 운영하는 병원이 아니고 건강보험공단에 속한 기관이기 때문에 예외를 둘 수가 없다고 했다. 아주 딱딱한 병원이었다.
이후에도 사업주와의 통화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고민 끝에 편지를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병원에 진료소견서를 요청했다. 진료소견서를 팩스로 공장에 보내고 공문형식으로 편지를 팩스로 보냈다.
"켈리씨가 산재를 당한 시기가 1999년도인지라 3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이 문제를 거론하는 것에 대해 어이없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병원 진료소견서에서 보듯이 수술이 필요한 상태이고, 지난 번 수술의 후유증으로 인한 것이 분명하다. 켈리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여러 방면으로 알아보았으나 어려운 상태다. 먼 타국으로 와서 산재를 당하여 후유증으로 시달리고 있는 켈리씨의 딱한 처지를 헤아려서 배려를 해 달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상담소에서는 산재처리를 위해 근로복지공단에 진정서를 보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켈리는 예약된 입원 날짜를 넘기게 되었고 켈리는 자기 돈으로라도 수술을 해야겠다고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남의 나라에 와서 불안정하게 있는 처지로 돈을 빌리기가 어디 쉽겠는가. 인권모임 사무실에서 큰 소리로 누군가와 전화로 언쟁을 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애쓰던 그가 80만 원밖에 못 구했다고 이제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공연히 사장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한 달을 허비한 꼴이 되었다.
팩스를 보낸 다음 날, 사업주에게서 전화가 왔다. 60만 원을 통장으로 보내겠다는 것이다. 한참의 실랑이 끝에 사업주는 80만 원을 주겠다, 그 이상은 죽어도 안 된다고 딱 잘라 말했다.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 켈리가 80만 원 마련했다고 하니 수술은 받을 수 있겠구나, 더 내라고 따졌다가 그마저도 안주겠다고 하면? - 그리고는 사장에게 켈리의 통장번호를 일러주고 고맙다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맙소사! 고맙다니 뭐가 고맙단 말인가, 애초 치료비도 켈리와 반반씩 부담하고 산재처리를 하게 되면 사장은 과태료도 내야하고 사장이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일 아닌가. 실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험이 따르기는 했지만 흥정하듯이 밀고 당기고 실랑이를 할 것이 아니라 사장에게 더 강경하게 요구했어야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후회가 되었다. 그마저도 안 줄까봐 얼씨구나 고맙다고 할 것이 아니라 최초 치료비 분담부분과 산재처리의 경우를 근거로 들이대며 '안 줄 테면 관둬라, 근로복지공단에 진정서 내겠다'고 했으면 사업주는 전액 다 부담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며칠 후에 켈리의 통장에 80만 원이 입금되었고 빠른 시일내에 수술을 받겠다고 켈리가 전화를 했다. 그가 인권모임을 찾은 지 꼭 한 달 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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