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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상담사례

번호 : 36
글쓴날 : 2003-07-07 14:25:19
글쓴이 : 노동인권회관 조회 : 4078
제목: 사망한 한국인남편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하려면

이틀밖에 살지 않았는데?

한 분수
외국인 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상담국장

리사가 상담소에 왔을 때, 그녀는 시효가 지난 외국인 등록증과 필리핀에서의 결혼증명서를 보여주었다. 등록증의 주소는 제주도였으며 지금은 남양주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이 건설현장에서 일하다가 일 년 전에 사망했는데 보험금(보상금?)을 받지 못했으니 이를 수령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취지였다.
그러나 한국어를 거의 하지 못하던 리사로부터 관련사항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힘들었다. 리사는 남편이 일했던 현장이나 회사이름도 모르고 사망한 날짜도 정확히 모르고 있으며 남편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서 보험금을 받게 도와달라고 상담소를 찾아오다니! 리사가 알고 있는 것은 시어머니 전화번호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리사는 더 이상의 정보를 나에게 주려고 하지 않았다. 잘 모르고 있는 듯하기도 했고, 상담소를 경계하고 있는 듯 하기도 했다. 단지 남편이 죽었고, 시어머니로부터 매를 맞았고 보험금이 있다는 말만 하였다.
아는 것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 일단 알아나 보자는 심산으로 시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어보았다. 제주도에 살고 있는 시어머니와는 통 연결이 되지 않았다. 수 차례 전화를 건 끝에 드디어 노인이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내가 '리사…'를 입에 올리기가 무섭게 그 분은 욕을 하면서 전화를 끊어 버렸다.
시어머니로부터 아무런 정보를 얻지 못한 나는 상상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가능성을 놓고 이리저리 따져보았다.
건설현장에서의 사고라니 유족보상금을 받을 것이 있다는 것인가? 그러면 산재처리를 했던 걸까. 근로복지공단에 확인해보니 사망자 이름으로 접수된 사건은 없었다. 사업주가 산재처리를 안 한 걸까.
그러면 무슨 보험금?
이 단계까지 리사는 서너 번 상담소에 왔다. 올 때마다 그저 가만히 있고, 무엇이든 정보를 주어야 할 터인데 주는 정보는 없었다. 나의 짧은 영어실력으로는 리사와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도 없었다. 답답했다. 할 수 없이 영어를 잘하는 자원활동가를 요일을 바꿔 리사와 주로 만나게 하였다. 간신히 리사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리사는 한국에 오기 위해 필리핀에서 모 종교단체의 주선으로 한국인 남편을 만났고 필리핀에서 결혼식을 하고 한국에 왔다. 와서 보니 리사의 남편은 매일 술을 마셨으며 리사는 시어머니와 남편, 심지어 시누이한테도 매를 맞았다. 그래서 도망 나와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시댁식구들이 자기를 찾고 있으며 필리핀 사람들에게 리사를 찾게 해주면 돈을 준다고 했다며(아니, 현상금까지?) 자기 있는 곳을 알아낼까 봐 두려워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남편 사망 후 시누이 남편과 시어머니가 자기를 찾아 서울에 와서 제주도에 내려가 이혼서류에 사인을 해야 한다고 가자고 했으나 무서워서 가지 않았다고 했다.
이미 남편이 사망했는데 시댁에서 왜 이혼을 요구했을까.
우선 리사의 남편에 대한 인적상황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과 사망사고에 대한 사실 확인이 먼저라고 생각되었다. 사망사고이니 경찰에 사고접수가 되었을 것 같았다. 관할 경찰서에 변사사건 사실확인원 발급의뢰서를 보내놓고 외국인등록증의 주소지 면사무소에 사망자의 신원을 확인해 보았다. 사망신고가 되어 있었으며, 리사와의 혼인신고도 돼 있는 상태였다. 면사무소를 거쳐 리사무소를 통해 사망자와 같은 동네 사람의 연락처를 알 수 있었다. 이 사람을 통해서 리사 남편이 건설현장에서 일한 것이 아니라 감귤농장의 비닐 하우스의 철골 위에서 비닐을 씌우는 작업을 하다가 강풍에 몸의 균형을 잃고 떨어져 돌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경찰서에서도 같은 내용의 답신을 받고 자원활동을 하는 공인노무사에게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런 경우에도 산재보험이 적용되는지.
답은 희망적이었다. 리사의 남편이 비닐하우스 설치를 하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면 문제는 없었다. 만약 아니라면? 그렇더라도 가능할 수는 있다는 답이었다.
농장주를 수소문하여 전화해보았다. 농장주는 의외로 술술 관련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의 결론은 '나는 책임이 없다, 오야지와 함께 여러 사람이 왔었고, 그 중에 리사의 남편이 있었고, 리사의 남편이 사망한 후 500만원을 지급하였고 이후 문제삼지 않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였다' 였다. 농장주에게 오야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농장주가 알려준 오야지의 연락처로 전화하였다. 오야지는 팀을 만들어서 비닐 하우스 설치작업을 도급받아서 하는데, 자기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일당받고 일을 했던 것이며, 오야지라고 해서 특별히 더 챙겨간 것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말끝에 오야지는 리사의 남편에게 사망보험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면서 사망자의 매제 연락처를 알려주었다.
다시 공인노무사에게 물어보았다. 이런 경우 산재보험이 되는지에 대해. 이번에는 비관적이었다. 산재보험이 안될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사망보험금이 있단 말인지....혹시? 생명보험?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다.
이번에는 사망자의 매제, 즉 리사의 시누이 남편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리사를 찾으러 서울까지 왔었다고 하니 사건의 정황을 파악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전화를 받은 사람은 시누이였다. 시누이는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누이 옆에 남편이 있었는지 남편과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시누이 남편 말에 따르면 리사는 한국에 와서 남편과 이틀인가밖에 살지 않았고 모종교단체에 가 있었으며 그 때문에 처남이 아내 찾아다니느라 일도 않고 술만 먹으며 방황했다, 리사에 대해 실종신고도 내었었다, 장례식 때 나타나지도 않았다, 보험금 때문에 리사를 찾아 서울까지 올라가 리사를 데려오려 했으나 오지 않아 애를 먹었다며 이제 와서 무엇 때문에 연락을 하느냐고 화를 내었다. 그러나 리사의 말은 그렇지 않았었다. 리사는 결혼생활을 3개월 가량 했었다고 했었다. 계속 화를 내는 시누이남편을 이리저리 달래가면서 사망보험금에 대한 정보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얘기가 길어지면서 시누이남편에게서 생명보험에 대한 애기가 나왔다. 리사 남편이 결혼전부터 들어놓았던 보험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누이가 보험회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도 하였다. 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고 잽싸게 물어보았다. "무슨 보험회사이지요?" 시누이남편은 "삼성이다"라고 말하였다. 나는 리사가 사망자와 합법적으로 혼인신고도 마치고 실제로 결혼생활을 한 처이기 때문에 사망보험금을 받을 법적 권리가 있으니 보험내용에 대해 알려달라고 하자 시누이남편은 '그렇게 하기 싫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에는 리사한테 왜 이혼서류에 사인을 하라고 했는가 물었다. 이에 대한 시누이남편의 말은, '이미 죽었는데 무슨 이혼이냐, 사망보험금이 있는데 일시금은 시어머니가 받고 연금은 리사를 주려고(?) 사인하라고 한 것'이라고 했다.
일시금은 시어머니가 받고 연금은 리사를 주려고 했다? 오히려 그 반대이면 모르겠는데.....
그 간의 물색 끝에 몇 가지 의문이 풀렸다. 이번에는 삼성생명보험회사에 전화를 하였다. 리사 남편의 이름으로 생명보험이 든 것이 있는지, 사망보험금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런 사람의 이름으로 든 보험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럴리가....
보험회사에 다니는 아는 언니를 통해 사망보험금 지급 절차에 대해 물어보았다. 생명보험협회에서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는 생명보험협회에 전화를 하여 보았다. 그 결과 리사의 여권사본과 혼인신고가 되어있는 호적등본, 사망진단서를 지참하고 본인이 생명보험협회를 직접 방문해야 한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리사와 함께 인근 동사무소를 찾아가 행정 온라인전산망을 이용하여 호적등본을 발급받고 경찰서에 사망진단서 발급병원을 문의하여 병원에 사망진단서 발급신청서를 협조공문과 함께 우송하였다. 사망진단서가 도착한 후 생명보험협회에 조회를 신청하니, 리사의 남편이 가입했던 보험의 종류와 가입회사 등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담당 보험설계사가 시누이였으며, 회사는 삼성이 아닌 다른 보험회사임을 알게 되었다. 시누이 남편이 내게 거짓말을 한 것이었다.
모든 앞 뒤 정황이 파악되었다. 이제부터는 별 문제없이 순서에 따라 진행하면 되는 것이었다. 생명보험협회를 리사와 함께 찾아가 관련서류를 제출하고 기다렸다. 리사는 처음 보이던 경계하는 태도에서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상담소에서 같이 점심도 먹고, 필리핀에서의 자신의 생활, 가족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남편에 대해 느끼는 연민과 아쉬움도 얘기하였다.(리사는 남편은 그런대로 괜찮은 남자였고, 때리지만 않았어도 계속 결혼생활을 했을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생명보험협회에 관련서류를 제출하고 난 10일 후, 드디어 리사는 보험회사에서 남편의 사망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었다. 리사가 상담소를 찾아온 지 꼭 2개월 반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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