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외국인이주노동자 투쟁의 전개와 정부정책의 문제점(2002.9) |
외국인이주노동자 투쟁의 전개와 정부정책의 문제점
박 석 운(노동인권회관 소장/전국민중연대 상임집행위원장)
1. 들어가는 말
한국에서의 외국인이주노동자 정책과 이주노동자운동이 현재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지난 7월17일 국무총리 산하 국무조정실에서 발표된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은 제목은 제도개선방안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제도개선이기는 커녕 심각한 제도의 개악으로 평가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노동부 등 정부당국에서 도입을 추진해온 고용허가제 등은 실종되고 대신 기존에 국내외적으로 "현대판 노예제도"라고 비난받던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는 약간의 손질만 한 채 그 골격은 그대로 유지 온존되면서 도리어 그 규모의 대폭 확대가 추진되고 있다.
한편 월드컵 축구 개최에 즈음하여 불법체류(미등록) 외국인이주노동자의 일제신고를 받았는데, 운동권 일각의 적극적인 반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26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신고하고 출국기간을 내년(2003년) 3월25일경까지 유예받았는데, 관련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들에 대한 사면 또는 양성화 조치가 과연 어떤 경로와 방법으로 취해질 것인지를 주목해 왔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7월에 발표된 정부방침은 이와 정반대로 이들 자진신고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 26만명 전원을 모두 출국시키고 대신 산업기술연수생을 대폭 확대도입하여 그 빈자리를 메우겠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신고자 전원을 출국시키겠다는 정책은 현실에서는 도저히 실현불가능한 정책방향이고 결과적으로 불법체류자 숫자만 늘리는 것으로 귀결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의 잘못된 정책 시행에 대해 외국인이주노동자들과 이주노동자상담지원단체들은 즉각적인 반대투쟁에 돌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정부의 정책방향을 바로 잡거나 제도개선 입법을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데, 투쟁 방법론과 관련해 약간의 혼선도 있는 실정이다.
이 글은 이러한 기로에 서서, 지난 10여년간의 외국인이주노동자 투쟁의 전개과정을 정부정책의 변천과정과 조응시켜 살펴 본 이후, 최근 정부의 "제도개선"방안을 점검하고 실천적 대응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쓰여졌다.
2. 지난 10년간의 외국인 이주노동자 투쟁의 전개
가. 산업연수제도의 도입과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증가
한국은 외국인의 국내취업을 기본적으로 금지하되, 전문분야별로 내국인으로 충원하지 못하는 특수부문에 한정하여 최소한의 범위 내에서 외국인 취업을 선별적으로 허용하는 이른바 "대체성의 원칙"을 견지하였다. 그러다가 1990년대초 주택 200만호 건설 등의 이유로 저임금 단순노동자들의 인력부족현상이 나타날 무렵, 정부는 1991년 11월 1일부터 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시행하였다. 당시의 연수제도는 해외투자기업의 현지고용 노동자들을 한국내로 데려와서 기술연수를 시킨 후 본국으로 돌려보내 현지 공장을 가동시키기 위해 도입하는 제도라고 소개되었는데, 당시 산업기술연수제도를 통해 입국한 외국인이주노동자 숫자는 매년 약 8천-9천명 정도였고 초기에는 사회적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그 무렵인 1990-1991년경 관광비자나 방문비자로 입국하여 공장 등에서 일하는 미등록 외국인 이주노동자 숫자가 급증하여, 약 10만 명의 외국인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전국의 영세·중소사업장에서 취업하게 되었는데, 인권침해 사례 등이 알려지게 되면서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로 떠오르게 되었다. 한편, 간헐적으로 시행되던 단속에 걸려 강제출국되는 외국인노동자들이 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사용사업주까지 벌금형의 형사처벌을 받는 경우가 빈발하였다. 그러자 각 공단지역의 영세·중소사업주들은 인력난을 호소하면서 외국인노동자 채용을 합법화해 줄 것을 집단적으로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자 정부당국은 1992년 6월 10일부터 7월말까지 일제신고기간을 정하여 신고토록 하였다. 신고한 경우에는 기왕에 출입국관리법을 위반하여 취업한 외국인노동자나 사용사업주를 처벌면제하는 한편 신고한 사업주 책임하에 1992년 12월말까지 1차로 출국기한을 연장시켜 그때까지의 국내 체류를 사실상 허용하였다. 그후 4차례에 걸친 6개월씩의 출국기한 연장조치(출국유예조치)를 취하였다가 그 무렵(1994년6월) 중소기협중앙회를 창구로 한 산업기술연수생제도가 확대되고 이 제도를 통한 단순 외국인력을 대거 도입하는 쪽으로 정책방향이 세워지면서 출국유예조치는 더 이상 취해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정부당국은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채용을 법률상 합법화시키는 조치를 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국내 영세 중소기업의 심각한 저임금노동력 부족상황에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을 일시에 출국시키면 이들 기업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형편을 고려하여 '시한부 합법화(양성화)', '유사합법화' 시킨 것으로 판단되었다.
나. 산재피해 외국인이주노동자 농성과 산재보험 적용
초기에 한국에서 일한 이주노동자들은 아무런 법적, 제도적 보호나 사회운동단체의 지원조차 받지 못한 채, 마치 어린아이가 아무런 옷도 무기도 없이 정글에 내팽겨쳐졌을 때와 같이 극심한 임금체불, 산재, 폭행, 성폭행 등 매우 심각한 노동권 및 인권침해에 시달렸다. 한국사회에서 최초로 외국인이주노동자에 대한 조직적인 지원활동이 시작된 것은 1992년 5월말경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상담활동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초기에는 체불임금해결, 산재보상, 폭행사례 해결 등의 기초적 인권침해사례에 대한 상담지원활동에 주력하였는데 당시 그 참혹한 실태와 상담신청을 위해 끝도 없이 밀려드는 피해 이주노동자들의 행렬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최초의 집단적인 투쟁은 1994년초 산재당한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의 집단농성투쟁이 감행되면서 시작되었다. 산재당하고도 보상은 커녕 치료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산재피해 이주노동자들의 실태가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적 물의는 증폭되었다. 위 농성투쟁의 결과 당시 대통령이 1994년 2월 미등록 외국인이주노동자라 할지라도 업무상재해(산재)를 당하면 산재보험에 의한 보상을 하도록 지시하기에 이르러, 최초로 정부당국의 긍정적 조치가 취해졌다. 이어 1994년 9월에는 비록 미등록(불법체류)상태의 이주노동자라고 할지라도 임금체불 등의 노동법 위반 사례에 대해 노동부에서 사용자를 상대로 행정지도하여 해결하도록 지침이 내려졌다.
다. 산업연수제도의 편법 운용과 연수생들의 투쟁, 그리고 연수제도의 일부 개선
해외투자기업에서 소규모로 실시되던 산업기술연수제도가 편법적 외국인력 도입제도로 광범하게 활용되기 시작한 것은 정부의 결정에 따라 1994년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연수생의 모집·알선·연수·사후관리를 담당하여 2만명의 외국인산업기술연수생을 도입하면서부터이다. 연수생 정원한도(쿼터)는 극히 짧은 시간에 1만명-2만명씩 증원되어 얼마 안 있어서 8만명 규모로까지 증원되었는데, 임금수준은 당시 법정최저임금의 64%-79% 수준밖에 안되는 극히 저임금이었고 그나마 본국으로 송금한다는 명목으로 또는 적립후 출국시 지급한다는 명목 등으로 이주노동자 본인에게 직접 지불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산재보험 적용이 안되고 단지 입국당시 사보험 방식으로 체결된 상해보험이 고작이었으며,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기술연수는 전혀 실시하지 않고 실제로는 작업현장에서 노동을 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명목이 기술연수생이라는 구실로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고 따라서 한국노동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또 사업장 이탈을 방지하기 위해 여권을 압류하고 외출도 통제하고 감시하는 등 마치 "현대판 노예"와 방불한 극심한 제도적 인권침해상황이 전개되었다.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하고 사업장을 탈출한 네팔출신 산업기술연수생 13명이 상담지원단체들과 함께 1995년 1월 9일 명동성당에서 천막농성에 돌입하였다. 당시 온몸에 쇠사슬을 두르고 "We are human", "We are not animal"이라며 절규하던 연수생들의 모습을 TV나 사진을 통해 보게 된 수많은 한국인들은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연일 매스컴에서 대대적으로 보도되고 당시 38개 민주·사회단체들이 모여 결성한 '외국인 산업기술연수생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적극적 지원활동을 하면서 외국인산업기술 연수제도의 일부개선책이 발표되었다.
그 개선책의 주요내용은 1995년 3월 1일부터 외국인산업기술 연수생에게도 산재보험, 의료보험을 적용시키고, 근로기준법상의 강제근로금지, 폭행금지, 임금지불, 금품청산, 근로시간 준수 등의 중요사항에 대해 법적 보호를 부여하며, 또 산업안전보건법상의 안전과 보건상의 조치 및 건강진단 등을 적용, 실시토록 한다는 것이었다. 또 최저임금법을 적용하고 또한 임금은 본인이 직접 수령토록 하면서 여권도 본인이 소지토록 제도화하는 한편, 송출기관의 횡포를 줄일 수 있도록 제도 개선한다는 것이었다.
라. 이주노동자 지원활동에 대한 탄압과 제도개선투쟁
94-95년에 이르러서 전국 주요지역에서 외국인이주노동자 상담지원활동을 하는 단체들이 활동을 시작하였다. 특히 외국인이주노동자 문제는 결코 미봉책으로 해결될 수 없고, 외국인산업기술연수제도의 폐지와 정당한 외국인이주노동자 도입정책과 관련 근본적 제도개선이 되어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 노동허가제 등을 축으로 하는 가칭 "외국인노동자보호법"의 제정을 위한 구체적 입법지침이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에 의해 1995년 10월 발표되었다. (이 입법지침을 기초로 조문화한 입법안이 1996. 7월에 발표되고 1996년 여름 이 법안은 국회에 입법청원되었다.)
1996년 4월 총선이후 새로 구성된 국회를 겨냥해서 '외국인노동자보호법'제정운동본부 발대식, 법제정 청원 서명운동 및 다양한 캠페인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대답은 강경탄압방침을 휘두르는 것이었다. 1996년 6월초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 측은 성남외국인노동자의 집을 급습하여 산재치료문제로 상담하러 온 네팔인 부부 등 미등록이주노동자들을 강제 연행하는 사태가 벌어졌고, 이를 저지하는 과정에서 성남외국인노동자의집 소장과 사무국장이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6월 10일부터 서울 명동성당에서 미등록외국인이주노동자들과 외노협 소속 상담지원단체들이 합동으로 텐트농성투쟁에 돌입하면서 이에 항의하는 목소리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들끓게 되었다. 당시 농성투쟁의 주요 요구가 외국인노동자보호법제정과 두 사람의 석방이었다. 7월 중순에 가서 두 사람이 석방되고, 일부 국회의원들의 입법추진약속이 공개되면서 위 농성투쟁은 일단락되었다.
마. 정부나 국회의 제도개선 관련 동향
당시 노동행정을 맡고 있는 노동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총체적인 국내 노동시장과 연동시켜 외국인력정책을 수립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고용허가제를 축으로 한 외국인력도입 관련입법을 추진하였지만, 이에 반해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법무부 등 관계부처는 물론 중소기협중앙회 등은 고용허가제에 대해 극력 반대하면서 종전의 외국인산업연수제도를 유지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었다. 1996년-1997년 사이에 대통령직속 세계화추진위원회에서 외국인노동자관련 제도개선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고용허가제를 축으로 한 제도개선안이 추진되었으나, 막바지 단계에서 중소기협중앙회 측의 결사적 반대와 이에 추동된 산업자원부측과 법무부측의 반대에 부딪쳐 1997년 7월경에 이르러 결국 고용허가제는 좌초되고 대신 산업연수생 제도를 변형시킨 연수취업제(2년간의 기술연수와 이후 1년간의 취업)를 1998년부터 실시하는 것으로 귀착되었다. 정부내의 합리적 제도개선 노력이 이권과 이익단체의 로비에 걸려 왜곡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
한편 1996년 9월에는 신한국당 이재오의원 등 28인이 의원입법으로 '외국인근로자고용법' 제정안을 제출하였고, 또 1996년 12월에는 국민회의 방용석의원 등 34인이 의원입법으로 '외국인근로자고용및보호에관한법률'제정안을 제출하였다. 그러나 여당이나 야당 모두 당론으로 채택되지 못하고 국회에서 실질적인 심의도 진행되지 못한채 폐기되었다.
당시 산업연수생 도입 창구 역할을 하면서 산업연수생 도입과 관련하여 막대한 이권을 챙기고 있던 중소기협중앙회측이 노동허가/고용허가제가 입법되면 산업기술연수생제도가 폐지되고 관련된 금전적 이권이 상실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조직적이고 집요한 반대운동을 펼쳤는데, 이런 입법반대활동과 로비로 말미암아 정부입법이든 의원입법이든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게 되고, 대신 산업연수제가 변형된 채 계속 유지되었다. 특히 1997년말부터 몰아닥친 외환위기와 IMF관리경제 체제하에서는 실업률이 급등하는 등 경제난 속에서 입법추진은 말도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바. 2000년 들어 입법 재추진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해소되고 경기도 다소 되살아나던 시점인 2000년 여름부터 또다시 연수제도 철폐와 노동허가제 실시, 미등록이주노동자 사면 등을 요구하는 캠페인이 전개되었지만 입법은 성사되지 못하였다.
당시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 대통령이 명백한 추진의지를 보이고, 집권여당과 노동부에서 앞장서서 고용허가제를 축으로 하는 외국인력 관련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등 객관적 여건이 매우 좋았던 상황이었지만, 결국 막바지에 좌초되고 정부입법안도 제출하지 못한 채 중단되고 말았다. 당시 정부내 각 부처간에 이견을 해소할 대통령의 지도력이 발휘되도록 하든지 아니면 집권여당에서 의원입법으로라도 추진되었어야 했는데, 결국 이도저도 모두 성사시키지 못하고 또다시 입법추진이 무산되고 말았다. 청와대에서 추진하는데, 또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마당인데 하면서 너무 안일하게 대처하거나 또 이런저런 연유로 투쟁력이 분산되었고 결국 연수제도철폐와 노동/고용허가제 입법추진 투쟁으로 힘이 집중되지 못했던 것이 매우 아쉬운 장면이다.
사. 이주노동자들의 파업투쟁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초기투쟁은 상담지원단체와 이주노동자가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인권실태를 폭로하면서 제도개선 등을 요구하는 거점농성투쟁 등을 진행했던 것임에 비해, 시간이 경과되면서 이주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파업투쟁을 벌이는 일이 자연발생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산업연수생들에 의한 집단적 작업거부(파업)가 가끔 일어나곤 했는데,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전남담양에 소재한 세원전기의 필리핀 해외투자기업 연수생들이 진행한 1999년 10월 19일, 그리고 2001년 2월 19일 두 차례에 걸친 파업투쟁이나, 경남양산 소재 동아타이어 중국인연수생들이 2001. 10. 19.부터 진행한 파업투쟁, 그리고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 소재 종이박스제조업체인 산성(주)의 파키스탄 연수생들이 2002. 3. 21.부터 진행한 파업투쟁 등이 확인된다.
이들 산업연수생들이 파업을 통해서라도 관철시키려 했던 요구조건들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원초적인 수준의 요구임이 확인된다. 세원전기의 경우 요구조건은 한달 임금 350불(약42만원: 최저임금법위반)을 전액 원화로 한국에서 수령할 수 있게 할 것과 연장근로수당과 휴일근로수당을 지급할 것, 그리고 계약서상 식대와 생필품비 전액지급할 것 등이었고, 동아타이어의 경우는 법정최저임금 인상분(약5만원)을 식비명목으로 공제하는 것을 중단하고 무료숙식으로 규정된 계약서 내용을 지키라는 요구였으며, 산성(주)의 경우는 형이 사망한 동료연수생이 형의 장례식에 참석할 수 있도록 1년에 한달간 쉴 수 있게 되어 있는 계약서조항을 적용해서라도 일시 귀국하게 해달라는 요구였다. 이 정도의 눈물겹도록 소박한 요구조차 정상적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결국 파업투쟁으로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2002년 1월에는 산업연수생만이 아니라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도 파업투쟁을 진행하였다. 경기도 포천 소재 가구제조업체인 아모르가구에서는 현장의 반장급 중간관리자를 포함하여 전체 생산직 노동자 100여명 전원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고 한국인은 공장장 등 상급 관리자들과 관리, 영업직만 있는 사업장인데, 2001년 8월 15일과 2002년 1월 21일 2차례에 걸쳐 체불임금지급을 요구하는 파업투쟁을 진행하였다. 2002년의 경우에는 10여개 국가 출신 이주노동자들이 공통의 요구를 걸고 함께 6일간의 파업투쟁을 진행하였는데, 상담지원단체들이 투쟁에 직접 결합하는 등의 전폭적인 지원도 보태져서 체불임금을 모두 해결하는 성과를 내었다. 아모르가구의 파업투쟁을 계기로 영세사업장 만이 아니라 상당한 규모가 되는 사업장에서도 전체노동자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로 채워지는 놀라운 현실상황이 확인된 셈이다.
아. 법무부의 불법체류자 자진신고 실시와 자진신고 거부투쟁
법무부는 2002. 3. 12. 국무총리주재 관계장관회의를 거쳐 불법체류자 자진신고제도를 그 기본 축으로 하는 불법체류자 종합대책을 발표하였다. 그 내용은, 1) 2002. 3. 25.부터 5. 25.까지『불법체류외국인 자진신고기간』을 설정하여 이 기간 내에 신고한 모든 불법체류외국인과 그 고용주에 대하여 처벌을 면제하는 동시에, 2003. 3. 31.까지 최장 1년 범위 내에서 출국준비기간을 부여하고, 그 기간내에 출국하는 불법체류 외국인은 재입국규제를 면제함. 2) 동 신고기간 내에 신고하지 않은 불법체류외국인 및 그 고용주에 대하여는 집중단속을 실시하고 적발될 경우 엄중히 처벌함. 3) 불법체류자 단속 인원을 대폭 증원하고 보호시설 확충을 적극 추진하며, 불법입국이나 불법취업에 대한 출입국관리법상 벌칙을 대폭 강화함. 4) 불법취업외국인에 대한 입국규제기간을 1년에서 5년으로 연장하며, 4) 중국동포의 친지방문 허용범위를 현행 50세 이상에서 40세 이상으로 확대하고, 7) 산업연수생 무단이탈율에 따른 국가별 쿼타를 조정한다는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법무부에서 자진신고접수 방침을 발표하자, 이주노동자운동 간에 의견 차이가 나타났다. 평소 재중조선족 동포에 대한 선별적 연수제도 확대를 주장할 뿐 전체 이주노동자에 대한 고용허가제 도입에 찬성하지 않던 조선족교회쪽에서는 자진신고 거부를 주장하며 대표가 20여일간 단식하는 등 강력반발하였고, 또한 평소 조선족교회와는 반대 입장을 가지면서 고용허가제도 안되고 반드시 노동허가제가 아니면 안된다는 입장에 서있던 이주노조지부에서도 자진신고거부를 주장하며 명동성당 농성에 돌입하였다. 상호간에 평소 다소 다른 활동노선을 견지하던 조선족교회와 이주노조지부는 자진신고 거부를 주장하는 공동집회를 개최하는 등 초기에 공동투쟁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국내 이주노동자상담지원단체의 다수(35개 상담소)가 참가한 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외노협)에서는 내부 간담회를 개최하고 상담지원단체가 자진신고 거부를 권유하는 것은 옳지 않을 뿐더러 또한 대중성이 결여된 비현실적 전략전술이라고 의견을 모으고, 위 흐름과 달리 이주노동자들에게 자진신고제도의 구체적 내용과 문제점 등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되 자진신고할지 여부는 이주노동자 당사자가 판단, 결정하게 하는 방침으로 입장통일하였다.
법무부의 자진신고제도를 축으로 한 불법체류방지 종합대책은 이주노동자문제의 제대로 된 해결책이 도저히 될 수 없고, 또 본말이 전도된 미봉책임이 분명하며, 또 이미 지난 10여년간의 경험을 통해 전혀 실효성이 없음이 명백히 입증된 방안이다. 더우기 이에 더하여 충분한 검토없이 졸속적으로 자진신고제도가 시행됨에 따라 실무상의 혼선들이 일선에서 수없이 빚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법무부의 위 자진신고 조치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될 것이 거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 반면, 어찌되었든 자진신고하면 1년 가까이 합법적인 취업 혹은 체류가 가능하고, 또 1992-1994년의 경우처럼 출국기한이 더 연장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진신고하기 전인 지금도 미등록상태이고, 기한이 만료되어 그때 도망가도 미등록상태가 될 것이므로, 더 나빠질 것이 없는 셈이다. 이미 기존의 산업연수 제도가 매우 사악한 제도인데 반해, 차라리 이번 자진신고와 출국유예조치는 차악(次惡)정도로 판단되는데, 이는 더 나빠지지는 않고 대신 한시적으로는 좋아지는 점(그 기한동안은 강제추방의 위험없이 일할 수 있는 점)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진신고를 전면 거부하여야 한다고 투쟁방침을 정하고 이를 권고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한 대응방침이었다. 현재 자진신고를 전면거부할 수 있는 그런 조직력이나 투쟁력이 이주노동자 단체나 지원단체 그 어느 곳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객관적 사실이고 또 이런 상황에서 자진신고 전면거부는 전혀 실현 불가능한 방침이기때문이다. 또한 1년만이라도 마음 편히 일하고 싶다는 이주노동자들의 열망은 묵살 혹은 유보하여도 괜찮은 것이 아니다. 자진신고후 출국기한이 연장된 여권을 보여주며 "나는 legal"이라고 말하며, 환하게 열린 이주노동자들의 얼굴을 보더라도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자진출국기간 이후 실시될 강력단속으로 인해 강제추방될 미신고 이주노동자들의 원망으로부터 누가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모든 객관적인 상황 설명을 해주고,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대응방안이었다고 본다.
결국 거의 대부분(26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자진신고를 마침으로써 자진신고거부 투쟁은 사실상 실패로 귀결된 셈이다. 심지어는 자진신고 거부투쟁에 주도적으로 참가한 일부 지원단체에 긴밀하게 연계된 대다수의 이주노동자들도 극히 예외적인 몇사람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두 자진신고를 하였을 정도였다.
3. 정부의 외국인력정책 개선방안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가. 국무총리 국무조정실에서 지난 7월 17일 "외국인력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하였는데, 관련부처간의 합의를 거쳤다는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산업기술연수생제도를 확대, 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연수생 정원한도를 제조업의 경우는 기존의 8만2천명 수준에서 13만명수준으로 늘리고, 건설업은 기존의 2,500명에서 7,500명으로 정원을 늘리며, 기업화된 농축산업의 경우는 정원한도 5,000명 규모로 새로 연수생제도를 실시하는 한편, 연근해어업은 기존의 정원인 3,000명을 그대로 유지하는 등 연수생 총정원을 58,000명(62.7%)정도 증원한다는 것이다.
둘째, 식당 등 서비스 분야에 중국 등 외국국적 동포들에게 취업을 허용하는 가칭 "취업관리제"를 시행한다는 것이다. 1년 기한의 취업에 1년을 연장할 수 있어 2년간의 취업허용기간이 종료되면 출국해야 하고 일정기간이전에는 국내재취업이 금지되는 등 장기체류를 예방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셋째, 불법체류자에 대한 범정부적 단속체제를 구축하고 단속 인력과 보호시설을 확충하여 지속적이고 강력한 단속을 실시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미 자진신고한 26만명의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출국유예기한인 내년(2003) 3월 31일까지 모두 출국시킨다는 방침이라는 것이다.
나. 문제점
우선, 산업연수제를 폐지하기는 커녕 도리어 확대, 강화시켜 계속 편법적인 외국인력 도입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조치임이 분명하다. 산업기술연수제도는 이름만 기술연수생이지 실제로는 기술연수는 전혀 시키지 않고 노동자로 일시키는 표리부동한 제도이다. 또 명목상 '기술연수생'이지 '근로자'가 아니라고 하면서 한국노동법의 적용을 배제한다는 점에서 한국인 노동자와 차별하고 또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는 차별적이고 반노동권적인 제도이며, 그리고 본국에서 인력송출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액수의 송출비용이 소요되는 등 송출비리가 속출하는 비리수반형 제도이다. 더우기 불법체류(미등록)자보다도 더 낮은 임금을 강제하는 저임금강제형 제도이고, 이를 유지시키기 위해 여러 가지 인권침해적 강제조치를 제도화해 놓은 반인권적 제도이다. 이와 같이 그 어느모로 보나 당연히 폐지되어야 마땅한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유지, 온존 시킬 뿐 아니라 확대 운영하려는 것은 정상적인 정책판단이라고는 도저히 이해될 수가 없고 단지 중소기협중앙회 등의 이권을 확대, 강화시키는 의미밖에 없다고 하겠다. 도대체 문명국가를 지향한다고 하면서 이런 표리부동한 정책, 편법적인 정책을 정부의 공식적인 인력정책으로 버젓이 발표한다는 것 자체가 후안무치한 짓이다.
둘째, 자진신고한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내년 3월의 기한내에 전원 출국시키겠다는 방침은 실현 불가능한 탁상공론이다.
미등록 이주노동자 사면을 포함한 합법적인 외국인력도입에 대한 방안마련 없이 실시되는 자진출국유도 방침은 이미 지난 10여년간의 경험을 통해 그 실효성이 없음이 입증되었는데도, 단속강화조치만으로 26만명에 달하는 자진신고자를 모두 내보내겠다고 판단을 하고 있는 정부당국자들의 우둔함에 분노를 넘어 차라리 연민을 느낄 지경이다.
한꺼번에 그렇게 많은 사람을 내보내는 것이 항공편만 생각하더라도(약1,000대가까이 필요함) 가능하지 않다. 또한 중소영세 사업장의 인력난 등으로 만일 전원 단속하여 추방시키려 들면, 수많은 중소영세 사업장이 문닫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어서 마구잡이식 단속이 거의 불가능하거나 영세중소기업주들의 상당한 저항에 부딪칠 것이다.
한국 법무부는 지난 92년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자진신고와 출국유예하는 조치를 실시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일제 신고한 미등록 이주노동자와 사업주에게 벌금 등 형사처벌을 면제해 주고 6개월간 출국기한 연기조치를 취해 주었다. 이후 4차례에 걸쳐, 한번에 6개월씩 출국기한연장조치를 취하다가, 94년 6월에 이르러 기한연장은 중단되고 그 이후에는 산업기술연수생을 대거 도입하는 새로운 제도를 실시하였던 적이 있었다. 당시 신고한 이주노동자들중 일정한 숫자의 사람들은 몇 차례 출국기한이 연장되는 사이에 자진출국하였고, 나머지 사람들은 기한만료 전후하여 적당한 시기에 또 적당한 방법으로 지정된 사업장을 이탈하여 또다시 미등록 이주노동자로 일하게 된 경험이 있다.
결국 강력단속을 통해 불법체류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 자리를 연수생으로 채우겠다는 논리로, "현대판 노예제도"나 다름없다고 비판받는 산업연수생 정원한도를 대폭 늘리려는 구실로 이용될 따름이다. 결국 사태진행은 산업연수생 숫자만 대폭 늘어나고, 또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숫자도 대폭 증가하게 되는 것으로 귀결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번 이른바 "개선방안"의 시행은 이주노동자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증폭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면서 어쩌면 합리적 문제해결의 길을 아예 봉쇄시키는 결정타 역할을 하게 될 지도 모른다.
또 강력단속으로 불법체류 이주노동자들을 근절시키겠다는 정책은 필연적으로 실패하게 되어 있고, 이 방법으로는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것이 외국의 역사적 경험이다. 또 단속을 심하게 하면 할수록 문제가 음성화되어 폐단은 더욱 증폭되기 마련이고,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심각한 인권침해 등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새로 유발하는 촉발제가 될 것이다. 또한 설사 현재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낸다 치더라도, 새로 관광비자로 입국하는 외국인들을 원천봉쇄할 수가 없고, 관광비자 등으로 입국해서 각 사업장에 박혀 버리면 쉽게 단속하기 어려운 상태로 되면서, 여전히 미등록 이주노동자 숫자는 줄어들지 않거나 또는 계속 증가하게 될 것이다.
셋째, 기존의 이주노동자들을 모두 내보내고 그대신에 새로운 사람들을 들여 오겠다는 방식은 이주노동자들뿐 아니라 자본측에게도 불리한 방식이다. 이왕이면 값싸고 잘 훈련된 노동력을 선호하는 것이 자본의 논리이다. 자본측에서 보더라도 새로 외국인력을 데려 오게 될 경우에는 이들이 한국사회에 적응하고 또 기능을 숙련시킬 때까지의 교육훈련비용이나 숙련도 저하 등의 기회비용이 소요되는데, 이런 방안보다는 차라리 기능도 숙련되어 있을 뿐 아니라 한국말도 잘하고 한국사정에 익숙한, 그래서 효율성도 상대적으로 높은 기존의 이주노동자들을 계속 고용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독일 등의 경우에도 자본가들이 새로 외국인력을 도입하느니 오히려 기존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을 양성화시켜 달라고 요구한 역사적 경험도 있다.
넷째, 외국국적의 동포들에게 서비스업 등에 2년간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도록 하는 취업관리제를 실시하는 방안도 인종차별 또는 민족차별이라는 비난을 자초하는 정책방안이다. 취업관리제는 일종의 변형된 고용허가제와 비슷한 제도로 판단되는데, 이런 식의 변칙적인 제도운영이 되면 고용허가제의 장점은 사라지고 도리어 부작용만 남게 될 것이다. 먼저 단순외국인력을 합법적으로 도입하여 한국경제에 도움이 되게 하려면 우선적으로 제조업으로부터 실시해야 마땅한데, 인력이 부족한 제조업은 도외시하고 정부방침처럼 서비스업 분야에 우선적으로 외국인력을 도입하게 되는 바, 그렇다면 제조업 분야의 상대적 단순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화될 우려가 있다. 또 외국국적의 동포들에게만 합법적인 취업을 허용하는 방안은 혈통주의적 민족주의나 인종차별 또는 민족차별적 정책이 아니냐고 비판하면 할 말이 없어지게 된다. 우리가 재일동포에 대한 일본정부의 혈통주의적 우대정책이나 민족차별정책을 비판하고 일본사회의 한국인이나 대만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을 비판할 수 있는 도덕적, 논리적 근거를 상실하게 될 것이다.
한편, 2년간 합법적으로 취업할 수 있게 하는 취업관리제의 시행은 필연적으로 미등록(불법체류) 이주노동자 숫자를 증가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하게 될 것이다. 대개 재중국 동포의 경우 한국에 입국하는데 이런저런 비용으로 현재 기준으로 약 700-800만원씩의 비용을 쓰고 입국하게 되는데, 2년간 꼬박 벌어서 이 비용을 갚고 또 일부 생활비로 쓰고 일부는 송금하고 나면 기대하던 목돈 마련은 안되어 있는 상황에서, 출국일이 닥쳐 오게 된다.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중구으로 돌아가는 대신, 돈을 더 벌기 위하여 사업장을 이탈하고 불법체류상태로 넘어가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결국 위에서 서술한 바와 같은 그 어느 측면에서 보건 지난 7월 발표된 정부의 이른바 "제도개선방안"은 불법체류(미등록) 이주노동자 숫자만 대폭 증가시키는 결과로 귀착될 뿐이고, 이주노동자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도리어 기존의 모순을 유지, 온존, 확대, 강화시킬 뿐 아니라 새로운 모순과 문제점을 촉발하는 큰 재앙의 씨앗이 될 위험이 농후하다.
다. 대응방안
우선, 이주노동자 문제를 합리적으로 또 정의롭게 풀어 나갈 수 있는 사회적 공론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미 어느 정도는 이주노동자 문제가 우리 사회의 현안문제로 되어 가고 있는 측면도 있지만 아직도 핵심적인 사회적 의제로 설정되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실은 이미 약 40만명에 달하는 외국인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의 숨은 일꾼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고 이 숫자는 아시안게임을 거치면서 또 이번 정부조치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인데, 그리고 이 과정은 되돌아가기 어려운 불가역의 상황임이 분명한데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여러 민족과 한반도내에서 함께 어울려 사는 사회적 태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빨리 우리사회가 이른바 "다민족공생사회(多民族共生社會)"의 문화적 기반을 갖출 수 있도록 사회 전체 시스템과 문화적 지형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하다.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한 합리적 제도개선을 모색하는 노력이 이런 전환과정에 핵심적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런 의미에서 당장 현안이 되고 있는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개선 문제를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사회적 의제로 설정하고 이를 공론화하고 해결방안을 구체화하기 위한 광범위한 논의구조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한 초동 단위로는 우선적으로 167개 이주노동자지원단체와 사회단체가 결집해 9월9일 출범한 "외국인이주노동자 강제추방반대/연수제도철폐 및 인권보장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상정할 수 있고, 가능하면 넓은 범위의 사회단체들이 여기에 결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광범위한 의제설정과 해결모색을 위해서는 위 공대위 수준의 논의만으로는 부족하고 각종 단위, 특히 기존의 제도언론매체만이 아니라 인터넷 언론 등에서 이 논의를 확대하고 구체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개토론회나 온라인에서의 공개토론회는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TV토론도 추진하여 공론화시키는 것도 역시 필요하다.
둘째, 일반 국민대중들의 광범위한 참여를 조직해야 한다. 사실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한국국민들은 이주노동자들에게 동조적이고 이들의 권리보장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이 제대로 조직화되어 있지 못한 한계가 있다. 대중적 참여를 조직하는 방법으로는 관심있는 일반 국민대중들이 참여하는 가칭 이주노동자를 위한 "공익실천단" 또는 "인권침해감시단" 등을 온라인 또는 오프라인을 통해 조직하는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잘못된 제도인 산업연수제도에 대한 공익소송의 원고가 된다든지 또는 지역별로 네트웍을 형성하여 자신들이 참여가능한 방법으로 인권침해감시활동이나 구조, 지원활동에 동참할 수 있게 한다든지, 또는 전국적으로 공통된 전화번호를 단일화시켜 이를 가칭 "이주노동자 인권전화"로 명명하여 광범위한 캠페인을 전개하는 방법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외에도 사이버서명운동, 가두 서명운동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국민대중들의 참여를 조직화해 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셋째, 이런 대중적 여론형성을 바탕으로 정치권에 대한 작업이 필요하다. 대선 후보에 대한 면담을 통해 대선 공약화를 추진한다든지, 또한 국무총리 및 청와대 항의면담을 추진한다든지, 또는 모든 국회의원들에게 정책질의서를 보내고 이에 대한 의견을 회신토록 하여 그 결과를 공개하고 이를 바탕으로 입법추진의 기반으로 삼는 방안 등 다양한 노력이 필요하다.
넷째, 빠질 수 없는 것은 당사자인 이주노동자들이나 또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앞장서고 또 일반인들도 참여하는 집회, 시위 및 범국민 선전 캠페인 활동이다.
다섯째, 국제연대투쟁을 적극 조직하는 일이다. 특히 아시안게임 기간에 즈음해서 아시아 평화와 이주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국제연대선언을 조직한다든가 또한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이주노동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포지티브 캠페인(함께 어울려 사는 아시아+이주노동자 제도개선)을 추진하는 방안 등도 적극 모색될 필요가 있다.
4. 글을 마치며
만일 정부의 엉터리 제도개선대책이 저지되지 않고 그대로 시행된다면, 또 이번에도 노동허가/고용허가제 실시 입법이 도입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미등록(초과체류)이주노동자의 양성화나 사면조치가 실시되지 않는다면, 차후로는 더이상 손쓰기도 어려울 정도로 상황이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다른 문제도 마찬가지겠지만 이주노동자 관련 정책도 제도가 처음 설정될 때 올바른 방향으로 설정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이 시기에 힘을 집중하여, 제대로 된 정책과 공명정대한 제도가 더이상 시기를 놓치지 않고 실시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사회적 공론화와 대중적 투쟁 및 노력이 필요하다. (아웃사이더 제9호에 기고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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