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체류자들은 준비된 숙련공”
[내일신문 2005-08-17 15:09]
[내일신문]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1년 - 중간점검
사업주, 언어 등 문제로 선호 … 정부, 출국유도 정책 허사
인권보호 등 긍정적 역할 … 일부서 산업연수생 고집 논란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17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35만여명에 이르는 외국인
노동자들 중 고용허가제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근로자는 지난 7월말 현재
3만3766명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불법 체류자(19만명) 신분이거나
산업연수생 등으로 국내에서 취업한 상태다.
현재 외국인 고용허가제의 정착에 가장 커다란 걸림돌로 지적되는 것은
19만명에 이르는 불법 체류자들이다.
이들은 합법적 테두리를 벗어나 국내 영세사업장의 부족한 인력을
실질적으로 대체하면서 합법적인 경로를 통한 외국인 근로자의 수요를 가로
막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지금까지 총 5만명 안팎의 외국인 근로자를 고용허가제를
통해 충원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실제로 이를 통해 국내에 입국한 인원은
중국동포 등을 제외하면 1만4800여명에 불과하다.
이에 비해 불법체류자는 2003년 13만8000명에서 올해 7월말 현재 19만명을
넘어서 줄어들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금까지 이들 불법 체류자에 대한 강제출국과 자진출국을 병행해
왔지만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노동부 관계자는 “정부가 강력하게 불법 체류자에 대한 출국을 유도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하지만 금년 상반기에도 9만명 이상이 출국해 성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러한 평가에도 불구하고 해마다 들어오고 있는
산업연수생들의 불법 체류화, 합법신분 근로자의 불법 전환 등으로
불법체류자는 줄어들고 있지 않다.
문제는 이들 불법 체류자들이 국내 사업장에서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취업하면서 사실상 숙련공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기도 안산지역에서 금속 가공업을 하고 있는 한 업체의 김 모 사장은
“공장에 3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을 고용하고 있다”며 “이들은 언어와
작업기술 등에서 상당한 실력을 갖고 있어 새롭게 인력을 고용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체의 관계자도 “고용허가제를 통해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하고
있지만 작업수행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며 “언어 문제가 가장 심각해
복잡한 공정에는 사람을 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외국인 근로자를 사용하는 현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목소리로 해석된다.
물론 정부도 이러한 현실을 인정하지만 이들에 대한 불법 체류신분을 면해
주기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불법체류 신분을 한시적으로 면해 줬지만 자진
출국을 하지 않고 있다”며 “이들이 자꾸 정부의 선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정부는 불법 체류자들이 자진 출국할 경우 국내에 재취업할 수 있는
기간을 기존 1년에서 6개월로 단축해 출국을 유도하고 있다.
시민단체에서는 이들 불법 체류자들을 전면적으로 합법화 시켜줄 것을
정부에 요구하고 있지만 이렇게 될 경우 국내 정주 문제와 맞물려 보다
복잡한 상황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당국의 우려다.
따라서 이들 불법체류자들이 합법적으로 국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하는
현실적 방안을 찾는 것이 외국인 근로자 당사자들과 인력난에 허덕이는
중소 영세사업장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지적이 높다.
한편 정부는 지난 9일 ‘외국인 고용허가제 시행 1주년 세미나’를 개최해
운영실태와 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발전 방향 등에 대해서 토론했다. 이에
따르면 고용허가제의 도입으로 기존 산업연수생 제도로 인해 발생한
인권침해나 불법체류자 신분 전락 등의 문제를 일부 해소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러나 여전히 일부 중소기업 단체를 중심으로 산업연수생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는 움직임이 있어 고용허가제 정착에 걸림돌 작용을 하고 있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는 오는 2007년부터 현행 고용허가제와 산업연수생 제도를 병행하는
것에서 고용허가제로 단일화한다는 방침이다.
/백만호 기자 hopebaik@nae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