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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자료실_2011년도 글모음/다문화인권교육관련

작성자
nodong
작성일
2023-08-06 21:19
조회
282
워드프레스 내장 에디터 :

제목: 다문화인권교육, 짧은 흐름과 무거운 고민들(석원정/2011.11.24)


몇 년전부터 다문화교육이 왕성하게 시행되고 있다. 이 현상에 대해 긍정적 혹은 우려의 평가들도 왕성하다. 최근 인권활동가, 초중등교사, 다문화인권교육을 시행하고 있는 이주민단체 지원활동가들로 구성된 ‘다문화인권교육을 고민하는 수다방’이라는 모임이 다문화인권교육의 바람직한 상과 내용을 그리기 위해 수 차례의 모임과 워크샵을 가졌다. 우리 단체에서도 이 모임에 참가하면서 다문화인권교육에 대한 생각들을 공유하고 있다. 그 중 제1차 워크샵에서 우리 단체가 발표한 발표문을 싣는다. 우리 단체의 발표문은 초기부터 다문화인권교육을 시행해왔던 이주민지원단체로서의 경험과 솔직한 소회를 담은 내용인데, 발표문 중 일부 표현을 정제하고 수정하여 싣는다. (노동인권회관)



다문화인권교육, 짧은 흐름과 무거운 고민들
-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의 경험을 중심으로



석원정(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2011.11.24)



한국 거주 이주민, 2011년 6월 현재 136만여명, 참 많이 늘었다. 지금도 늘고 있다. 한국에서 이주민이 주목해야 할 그룹으로서 등장하던 시기가 대체로 1986년 아시안게임이후부터라고 하니 한국사회는 고작 25년의 이주민 유입기간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모든 것이 빠르게 변화하듯 이주민들도, 이주민 인권운동도 한해가 다르게 변화를 보이면서 오늘날까지 왔다.


다른 이주민유입국들과 달리 한국은 아주 짧은 시간에 아주 많은 이주민들이 늘어났고, 불꽃같았던 한국의 시민사회운동의 활력은 갓 등장한 이주민 인권운동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길지 않은 한국의 이주민 인권운동사를 보면, 이주민 유입국들에서 수십 년 혹은 수년에 걸쳐서 시도되고 실행되었던 일들이 짧은 시간동안 압축적으로 진행하기도 하고, 혹은 그들의 경험을 뛰어넘는 사례들도 있다. 이하에서는 그 동안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이주민 인권운동 중에서 다문화인권교육의 영역에 대해, 그 흐름을 짚어보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고민 속에서 변화를 보여왔던 다문화인권교육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1. 이주민을 둘러싼 한국사회 변화와 다문화교육의 흐름


한국에 이주민들이 등장하고 25년여가 흘렀다고 하였지만, 길지 않은 그 시간에서도 이주민들과 한국사회, 그리고 다문화인권교육은 유의미한 변화를 보여왔다. 이를 간략히 보기로 한다.


1990년대 : 1980년대 후반부터 유입되기 시작한 이주민들이 점차 한국사회에 존재를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라고 하겠다. 이 시기부터 이주노동자 및 결혼이주민들의 한국유입은 증가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한국사회 전체로 볼 때는 매우 미미한 숫자였고 한국민들의 이주민에 대한 이해수준도 매우 낮은 상태였다. 이 시기에 이주노동자들은 노동현장 및 일상생활 속에서 무시로 인권을 침해당했다. 특히 1991년 도입된 산업기술연수제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노동자들은 ‘현대판 노예’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극도의 저임금, 장시간 노동, 산재다발, 폭행폭언 등 각종 인권침해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산업현장에서 일어나는 비인간적인 처우에 견디다 못한 산재피해 이주노동자들이 1994년, 1995년 각각 경실련 강당,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돌입함으로써 한국사회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시기이기도 하다. 경실련강당, 명동성당 농성을 계기로 한국사회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어떤 시각’을 갖게 되었고, 그것은 ‘인권피해자’ ‘사회적 약자’로 이주노동자들을 수용하는 것이었다. 한국사회의 이런 시각은 이후 오랫동안 한국 사회가 이주민들을 바라보는 주요시각으로 유지되었다.
한편, 이 시기에 다문화교육을 시행했던 기관은 ‘국제이해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시행하던 유네스코 아태위원회가 유일했고, 이주민 인권단체들은 아직까지는 이에 대해 제대로 관심을 갖지 못한 상태였다. 1992년 최초로 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으로 개칭, 이하 ‘인권모임’)이 설립된 이후 해마다 전국에서 다수의 이주인권단체들이 만들어지기는 했지만 이주노동자들의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한 활동만도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2000년-2003년 : 이주노동자 및 결혼이주민이 이전시기보다 더욱 급증하고,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되기까지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새로운 외국인력도입을 둘러싸고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진영이 대정부투쟁에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였다. 한편 결혼이주민 영역도 증가추이가 예사롭지 않았으나 여전히 사회적으로는 조망받지 못하던 시기였다. 비자의적으로 부모를 따라 이주한 아동이나 부모의 한국체류중 출생-성장한 아동들은 더더욱 관심 받지 못하였다. 그러나 아동들의 교육권확보를 위한 작은 움직임이 시작되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하다.
2003년 2월에는 한국사회포럼에서 이주민과 관련되어 한국사회에 새로운 의제가 제기된다. ‘사회문화적 측면에서 본 이주노동자와 한국사회의 과제’(석원정)에서 그 동안 이주노동자 인권운동진영이나 학계의 일부에서나 주고받던 ‘다문화 다민족’이라는 용어와 개념이 한국사회운동에 소개되었고, ‘한국사회의 다문화사회로의 변화는 불가역(不可逆)’이며, ’다문화사회로 안착하기 위해 한국사회가 준비해야 할 과제‘들이 제시되었다.
이 즈음, 이주민 지원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한국적응을 위한 한국어 및 각종 교육/문화/후생복지프로그램들을 실시했다. 새로운 프로그램들이 지속적으로 시도되었고, 전국적으로 퍼져갔다. 그런 한편, 소수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다른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중에 한 부분으로 이주노동자 본국의 문화를 소개하기도 하였으나 다문화교육프로그램이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에서 네팔이나 버마의 문화, 부산외국인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버마의 민주화운동을 소개하면서 부수적으로 잠깐 버마의 문화를 소개하는 정도였다.


2004년-2007년 : 2003년 고용허가제라는 새로운 외국인력제도가 도입되고 이주노동자들의 체류자격이라든가 노동자성 등 법적, 제도적 혼돈상태가 일정 정도 정리된 이후 이주노동자 관련 국가사업들이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정부는 단순미숙련 체류자격을 가진 이주노동자들과 미등록노동자들을 분리하고 합법체류자격을 가진 이주노동자들 지원을 위한 국가기관을 설립한다. 그리고 노동부-법무부의 관심사였던 이주노동자들 사업이 문화관광부를 필두로 한 모든 정부부처들의 업무영역으로 들어오면서 ‘다문화’가 한국사회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다. 더불어 한국사회의 저출산-고령화현상에 대하여 국가 차원에서 연구가 준비되면서 결혼이주민에 대한 국가적 관심이 급증하게 된다. 이와 함께 이주여성과 아동에 관련된 각종 사업들이 속속 마련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에 이주민 인권단체에서 본격적으로 다문화이해교육을 시행하기 시작하면서 다문화인권교육을 주도하게 된다.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2004년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불식을 위한 인권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버마-몽골-방글라데시-파키스탄 문화이해프로그램을 서울지역의 초등학교에서 실시했다. 인권모임외에도 아시아인권문화연대(경기도 부천),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인천 소재),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인천 소재)들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들이 비슷한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그리고 2004년 겨울에는 문화관광부에서 처음 시도한 아트마켓(art-market)에서 인권모임에서 제안한 타문화이해교육프로그램이 선정됨으로써 문화예술단체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었다.(이후 프로그램 실행은 아시아인권문화연대와 함께 시행)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에서 연구와 개발을 통해 선보인 다문화이해프로그램은 단체별로 나름대로의 커리큘럼을 갖추고, 교육대상을 특정하고, 외국인강사를 양성하였으며, 프로그램의 형식도 수업, 축제, 놀이 등이 병합되는 등 본격적인 교육프로그램이었다.


2008년-현재 : 이 시기는 오늘날과 같은 ‘다문화’가 모습을 갖추게 되는 시기이다. 정부는 2007년 재한외국인처우기본법 제정, 외국인정책위원회 구성을 통해 한국의 외국인정책의 청사진을 그린다. 그 동안 민간 NGO가 해오던 각종 이주민 사업들을 국가가 주도적으로 일상사업화해가면서 정착되어가는 시기이며, ‘다문화’가 들어가는 각종 사업들이 열풍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왕성해지는 시기이기도 하다.
또한 이주민정책의 근간을 사회통합으로 두고 주된 대상을 한국인과 혼인한 결혼이주여성과 그들의 2세로 두면서 결혼이주여성의 한국문화동화 중심, 국제결혼가정 2세의 일률적 지원 중심의 프로그램들이 왕성해진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에게는 ‘인권이나 이주가 배제된 상태에서 다른 나라 문화 엿보기’ 식의 다문화이해 프로그램들이 주류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흐름과, ‘이주민들의 인적 자원화가 필요하다’는 NGO들의 주장, 거기에 ‘이주노동자 강사들의 불안정성’이 맞물리면서 다문화이해교육은 의외의 양상으로 흘러가게 된다. 통번역/이중언어/자국민 상담원/외국어강사 등으로 결혼이주여성들의 직업능력개발프로그램이 속속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한국어에 능숙한 이들 여성들을 자국문화강사로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만들어진다. 이 과정에서 ‘이주와 다문화’가 담고 있는 정치적 의미는 탈색되고, 다문화+인권의 접목을 모색하는 NGO들의 고심은 깊어지고 있다.



2. 다문화인권교육을 둘러싼 고민들과 모색들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다문화인권교육을 시행하면서 담아왔던 의도는 다음과 같았다.


1) 국제이해교육이 한국의 대다수 이주민들의 처지를 이해하고 개선하는 데 기여할 필요가 있다.


2) 대상국가는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의 모국으로 하고, 강사는 이주노동자이거나 이주노동 경험이 있는 아시아인들로 함으로써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불쌍한 사람’의 이미지를 탈피할 필요가 있다.


3) 교육내용은, 특정 국가의 문화를 소개하는 것과 함께 이주노동자에 대한 인식개선, 다문화사회가 되어가는 한국사회의 현상에 대해 함께 소개하도록 한다.


4)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서,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하여 이주노동자 강사는 한국어로 강의한다.


5) 초중등 학생 중 국제이해과정이 초등학교 6학년 2학기 과정에 짧게 들어가 있으니 초등 6학년을 우선 실시대상으로 하도록 한다.


6) 프로그램은 정규 수업시간에 교사의 재량활동으로 시행함으로써 이런 교육이 장차 정규프로그램으로 자리잡기 위한 노력의 하나로 삼는다.


대략 위와 같은 의도로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후 매년 프로그램을 손질해오면서 다문화인권교육프로그램은 내용과 형식, 대상층이 확대되어 갔다. 그러나 그 과정이 반드시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리고 프로그램 대상층에 따라 반응이 달랐다. 문화회관 등 문화기관에서는 새롭고 재미있는 체험프로그램으로, 일반 성인들은 흥밋거리로 다문화이해교육을 즐겼다. 그런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였던 교육현장에서는 교장과 교감으로부터 경계시당하고 거부당하기도 하였다. 비록 경계하고 거부하였던 학교측으로부터 나중에는 호평을 받기는 하였지만 말이다.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시행되면서 경험도 쌓이고 그러면서 초기에는 미처 예상치 못했던 고민들도 생겨났다.


가장 큰 고민은 다문화인권교육이 ‘이주+인권+교육+문화+이주민 역량개발’의 성격을 갖추고 있음을 날이 갈수록 명료하게 인식하게 되었음에도 그 어느 요소도 만족스럽게 갖추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았음에도 이주노동자에게 낙인효과를 줄 수 있는 이주노동자의 현실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알려주어야 하는가. 라는 점이었다.


또 하나 우리를 압도하였던 고민은, ‘전국의 초등학생 6학년->전국의 초등학생->전국의 중등학생’, 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학생들에게 인권단체가 한 학급, 한 학급 교육을 시행한다는 것은 ‘바가지로 바닷물을 퍼내는 격’이었다.


또한 한국어강의가 가능하고, 이주노동자로서 어느 정도 각성된 사람으로 강사를 한정하다보니 적절한 강사 찾기가 아주 어려웠다. 힘들게 강사로 양성해놓아도 한국내 위치가 불안정한 이주노동자의 특성상 여러 이유로 지속적으로 강의하기 힘든 경우가 발생했다.


강사 섭외도 힘들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사가 습득해야 할 자국의 문화를 포함한 강의내용을 한국인 활동가가 끊임없이 가르쳐주고 정보를 찾아주어야 한다는 점은 한국인 활동가를 지치게 만들거나 시도하기를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아무리 한국어를 잘한다고 해도 자국문화를 한국학생들에게 소개할 수 있으려면 상당한 정도의 문화적 감수성과 지식이 필요하고, 이를 한국학생들에게 적절하게 표현해야 하고, 늘 새로운 내용들을 채워야 하는데, 이를 스스로 충족시키는 이주노동자 강사는 ‘사실상’ 없었다. 그러다보니 한국인 활동가가 이런 종류의 프로그램이 필요한 이유도 알려주어야 하고, 정보도 찾아주고, 강의기법도 가르치고, 한국어도 가르치는 등 다재다능해져야만 하였다. 아무리 다재다능하고 열정적인 활동가라 하더라도 강사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되는 이 과정은 활동가를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하였다.


이러한 고민들은 인권모임만이 아니라 초창기 다문화인권교육을 시도하였던 이주민 인권단체들의 공통된 고민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단체에 따라 교육내용에 강조점이 조금 다르고, 이주민강사의 역할도 같지는 않았을 것이다. 인권모임의 경우, 이주노동자 강사와 한국인강사, 두 사람으로 강사진을 구성하고 수업하는데, 두 사람의 강의비율이 1:1이었다. 그랬기에 이주노동자 강사의 노력도 컸지만 이주노동자 강사에게 투여해야 하는 활동가의 에너지도 매우 컸다.


위에 열거한 고민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여러 시도를 하긴 했었지만, 사실 역량부족으로 어느 것 하나 뾰족한 묘안을 찾았다고 자부할 수준은 되지 못하였다.


먼저, 다문화인권교육에 내포한 ‘이주+인권+교육+문화+이주민 역량개발’의 요소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하고 다른 전문가들의 연구성과를 차용하기도 하는 등의 노력을 하는 것 외에는 현재까지도 별다른 묘안을 찾지는 못했다고 하겠다. 다문화인권교육에 걸쳐있는 각 영역이 서로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인권교육을위한초등교사모임(이하 ‘교사모임’)+인권활동가+문화활동가들과 워크샵도 개최하면서 다문화인권교육이 담고 있는 여러 층위의 요소들을 충족시키고자 노력해보았지만 쉽지도 않았고 여전히 많은 고민을 안고 있다.


이주노동자나 이주민에게 낙인효과를 줄 수 있는 위험을 줄이면서도 인권교육의 성격을 갖기 위해서는 ‘이주노동자들이 이런이런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라는 식의, 아동들에게는 강력한, 직접적 정보제공보다 간접적이거나 직접적이더라도 온건하게 제공한다든지, 다문화사회인 한국사회에 대해 객관적인 시각을 갖출 수 있게 쌍방향적인 현상으로 제공한다든지, 문화의 이동이 가져다주는 이점과 한국문화에 섞여 있는 다문화요소들을 제공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 하였다. 인권모임의 경우, 전체 교육내용의 20%내외로 이 영역을 배치하면서 해마다 내용을 갱신하면서 제공하고 있으나 늘 부족함을 느끼고 있다.


우리를 압도하였던, 엄청나게 많은 학생들과 해마다 학년이 올라가는 학생들에 대해서는, 일찌감치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즉 다문화인권교육의 가장 바람직한 형태는 학교에서, 교과목의 전 영역에 걸쳐 정규 교과과정에서 소화해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교사의 역할이 아주 중요하다는 결론도 내렸다. 이후 인권모임은 2006년 교사모임과 함께 초등교사들에게 필요한 교사용 커리큘럼을 개발하기도 하였다. 2009년에는 교사모임과 함께 교사직무연수를 개설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교사용 커리큘럼은 교사들이 사용하기에 녹록치는 않은 것이었다.


강사의 문제 역시 해결이 쉽지 않았다. 당시까지 이주노동자들은 대부분 미등록노동자였고, 이는 고용허가제가 실시되어 합법체류 노동자들이 많아져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어를 상당 수준 구사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와서 체류하는 기간으로는 그 정도의 한국어를 습득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생각다 못해 유학생을 강사로 양성하여 투입해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유학생강사의 경우 아무래도 한국내의 사회적 위치가 다르다보니 이주노동자인 강사와는 차이점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모두는 아니지만) 즉, 이주노동자 강사들의 경우, 다문화인권수업이 이주노동자에 대한 한국인들의 편견을 해소하고 인권을 존중하기 위한 프로그램이라는 취지에 전적으로 동의하였다. 그래서인지 자발성이 매우 뛰어났고 평소 다각도로 차별받고 있는 자신이 모국의 문화를 당당하게 설명한다는 점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적어도, 자부심을 가진 이주노동자들만이 그 어려운 강사양성과정을 참아내고 강사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유학생 강사의 경우, 편견해소나 인권존중이라는 측면에 대해 아무래도 이주노동자보다 공감이 떨어지고, 모국문화이해를 매개로 한다는 점에 대해서도 이주노동자보다 공감이 떨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한 강의후 일반적으로 한국학생들이 외국인강사에게 보이는 호기심과 호감에 대한 반응도 이주노동자 강사와 유학생강사는 달랐다. 이주노동자 강사들의 경우, 대부분 늘 공장에서 성인노동자들만 주로 접촉하였고 배타적이고 차별적인 대우의 경험들을 몇 번씩은 했었던 사람들인데, 편견 없이 자신들을 대하는 아동들을 보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도 새롭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그러나 유학생 강사들의 경우 아동들과의 접촉에서도 그들 자신이 별다른 감동을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후 인권모임에서는 유학생 강사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섭외하지 않는 것으로 정하였다.)


이후 결혼이주여성의 직업으로 다문화강사가 부각되면서 결혼이주여성을 강사로 양성하여 투입해보았으나 이 역시 만만치는 않았다. 결혼이주여성들 중에도 자신이 인권침해를 당한 경험이 있거나 직접적 침해는 아니더라도 자신의 문화를 당당하게 내놓을 수 없었던 경험을 아프게 가지고 있는 여성은 적극적으로 임하고 이 프로그램이 직간접적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그런 경험이 없거나 그런 경험을 하게 되는 이주민에 대해 동류의식을 갖지 못하는 이주여성들은 확실히 프로그램 의 취지에 대해 공감 정도가 떨어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면, 인권모임의 교육내용 중에는 외국어와 한국어 낱말을 맞춰보는 놀이가 있다. 이 놀이를 하는 취지는, 한국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뭔가를 해야 하는 외국인이 느끼는 막막함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하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취지를 공감하는 이주민강사는 단순한 놀이 하나라도 최선을 다하지만 공감이 떨어지는 이주민강사에게는 그저 ‘놀이에 불과한’ 것이 되고 마는 것이다. 이런 경험을 하고서 인권모임에서는 기본적으로 결혼이주여성이라 해도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서 취업하였던 경험이 있는 여성을 강사로 섭외하기로 정하였다. 늘 그런 여성들만 선발할 수는 없었던 것이 현실이기는 하지만 ‘이주노동자’로서 이주민 인권운동을 해왔던 인권모임으로서는 '이주노동자로서 겪는 현실에 대한 이해‘는 포기할 수 없는 요소였다.


한편, 강사와 관련하여 또 다른 문제점이 있었다. 일단 강사로 양성하고 나면 강사들에게는 강의의 기회가 주어져야 했다. 그런데 다문화인권교육은 프로젝트로 소화되기 일쑤였다. 간간이 교육청에서 예산을 투입하여 교육을 하게 하기도 하지만 교사와 달리 불안정한데다 강사료는 너무 적었다.(대략 1시간 3만원. 2시간 5만원. 그리고 강사가 두 사람일 경우 주강사에게만 지급한다. 그런데 인권모임처럼 한국인과 이주민이 같은 비율로 투입되는 프로그램에서는 너무 적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다문화인권교육을 보다 활성화시키기 위하여 많은 사람을 강사로 양성하고 양성된 강사들이 많은 수업을 소화할 수 있게 해야 함에도 이를 제대로 시행할 수 없었다. 한때 몇몇 단체들이 모여 사회적 기업을 생각해보기도 했으나 이 역시 쉽지 않았다. 이 문제는 초기 다문화인권교육 시행단체들만이 아니라 현재까지도 지속되는 문제인데, 그로 인해 최근 몇 년간 결혼이주여성 다문화강사 양성프로그램이 여기저기서 시행되었음에도 양성된 강사들이 제대로 교육하지 못하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강사교육을 받았음에도 강사로서 활동하지 못하는 이유가 단지 강사료나 강의기회의 부족만은 아님은 물론이다. 개중에는 양성프로그램을 거쳤지만 강사로서 필요한 강의능력을 갖추지 못하는 결혼이주여성들도 있기는 하다.



3. 바람직한 다문화인권교육을 위한 조건들


1) 올바른 시각
다년간 나름대로, 다문화인권교육을 잘 해보려고 애써온 것 같으나 솔직히 만족스럽지는 못하다. 다문화인권교육에서 ‘만족스럽다’라고 한다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 것일까? ‘다문화인권교육은 이주+인권+교육+문화의 요소를 지니고, 각 영역들은 다문화인권교육이라는 속에서 서로 만나야 한다’라는 생각은 몇 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좀더 풍성하고 구체화되었으면서 한편 더 다양한 회의를 하게 되기도 하였다.


때때로, ‘혹시 이주민 인권에 대한 이해는 인권교육으로 소화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다문화이해교육은 문화의 다양성-상대성-일반성에 대한 이해나 한국사회의 변화 정도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의기소침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화예술교육만이 강조된 다문화교육을 보면, 한국에서의 이주민의 삶과 동떨어진 문화교육에 대해 문제점을 짚게 된다. 일반적인 인권교육프로그램들을 보면, 이주민들이 한국사회 전체와 직면하게 되는 인권의 문제들에 대해서 충분히 다뤄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또다시 궁리를 하게 된다. 2011년에도 새로운 방식으로 다문화인권교육이랍시고 시도해보았다. 초등학생 5, 6학년 어린 꼬맹이들의 반응에 일희일비하면서 매번 교육이 끝날 때마다 반성하고 점검한다. 괜찮아으면 괜찮았던 대로, 괜찮지 않아으면 괜찮지 않았던 대로 늘 반성거리를 안겨준다. 다문화인권교육은.


2) 시각을 소화해낸 교육내용
집회도 아니고 기자회견도 아닌,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문화인권교육은 올바른 방향을 잡았다 해도 ‘어떻게’ 소화해내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무릇 모든 교육이 그렇기는 하지만, 자칫 피교육자들에게 반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주민의 인권을 강조하다보면 인권을 침해하는 한국인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례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노련하게 소화해내야 할 필요도 있으니 이 역시 고심이 필요하다.


3)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해보아야
문화를 담으면서 이주민의 본국문화를 담아내려고 할 때면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기본적인 이해는 물론이고 그 나라 출신 이주민들의 한국에서의 삶에 대해 어느 정도는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생생한 사례를 잡아낼 수 있고, 많고 많은 이주민 본국의 문화 중에 선별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서, 만약, 결혼한 이주여성이 한국의 특정 문화를 특히 괴로워한다면 본국문화는 어떠한지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인으로부터 어떤 인권침해를 당했다면, 그 사례에 내재한 문화적 차이가 있는지를 잘 살펴야 한다. 그리고 해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가.


4) 강사
강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그러나 다문화인권교육의 경우, 특히 이주민 본국문화이해를 희망하는 교육의 경우, 한국인강사와 이주민강사가 함께 참여하는 것이 더 좋고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위험을 줄이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어린 아동들이라 해도 호기심은 방향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한국인강사와 함께 강의준비를 하면서 한국인강사는 이주민과 이주민 본국에 대해 이해하도록 하고 이주민강사는 한국인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만약 이주민 강사가 인권의식이 낯설다면 노련한 한국인 강사가 이주민 강사가 다문화인권교육의 취지에 공감할 수 있도록 이끌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몇 년전부터 다문화강사양성프로그램을 이수한 결혼이주여성들이 많다. 그런데 그들이 다 강사로서 활동하지 못하고 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강사로서 능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활한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강사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문화교육에서 간접적으로라도 인권교육을 함께 소화하겠다고 한다면 강사 자신이 먼저 인권교육을 받아야 할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것을 문화교육 속에 녹여내야 한다. 얼마나 어려운 일이지.


5) 강사를 양성하는 양성기관의 역할
강사를 양성하는 양성기관은 위에 열거한 조건들이 충족되도록 인적, 물적 자원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양성기관이 어떤 관점에서 다문화인권교육을 시행하는가에 따라 강사양성도, 커리큘럼도 접근도 달라질 것이다.



제목: 초등학교 다문화교육의 현실(이기규/초등교사/2011.11)


이 자료는 2011. 11. 23일에 있었던 인권단체+이주단체+교사들이 함께 모여 '다문화+인권교육'을 고민하기 위해 모인 워크샵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발제한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