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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자료실_2006년도 모음

작성자
nodong
작성일
2023-08-06 21:06
조회
127
워드프레스 내장 에디터 :





제목: 2006년도 외국인력도입계획(노동부/2006.3)







제목: 불법체류 동기유발 근절방안을 위한 법무부 공청회 발제문(석원정/2006.5.4)

* 2006년 5월 4일 무역센터에서 법무부 주최로 있었던 '불법체류 동기유발
근절방안을 위한 법무부 공청회 발제문입니다.이날 공청회에는 9명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 대표의 발제와 5명의 법조계-학계-기업가의 토론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제목: 이주노동자의 문화실태와 개선방향에 대하여(2006.6.28)

2006년 6월 28일에 있었던 이주노동자의 문화권신장을 위한 토론회의 발제문입니다.








제목: 이익집단의 고용허가제 개입, 무엇이 문제인가(2006.11.)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하는 <월간 노동사회 > 2006년도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이주노동자의 노동생활

2006년 3월 석원정(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

1. 이주노동자의 한국유입
2005년 12월 현재 한국내 이주노동자는 34만6천명에 달하고 있다. 2006년에는 이 숫자가 38만여 명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물론 이 숫자에 포함되지 않은 불법체류자들도 감안하면 한국내 이주노동자는 40여만 명을 훌쩍 넘을 것이다. 오랜 노동력 송출국가였던 한국에 이주노동자가 유입되기 시작한 때를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잡고 있으니, 한국은 불과 17년 동안에 40여만 명이 넘는 이주노동자를 받아들이는 노동력유입국가로 변신한 것이다. 더구나 세계 최고의 고령화진전속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다 보니 이 숫자는 나날이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늘어나는 외국인력을 받아들이는 한국사회의 수용자세는 충분하지 못하다. 그토록 수많은 인권침해사례가 보고되고 있고, 압도적으로 우호적인 한국사회의 여론이 형성되어 있음에도 인권침해사례는 끊이지 않고 있다.

2. 한국의 외국인력제도
외국인력을 수입하고 있는 각국은 나름대로 자국의 상황에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외국인력제도를 가지고 있다. 현재 외국인력도입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외국인력제도는 노동이민방식-노동허가제방식-고용허가제방식-산업연수제 방식으로 대별할 수 있다. 노동이민방식은 오스트레일리아나 뉴질랜드 같이 국토가 넓고 인구가 적은 국가에서 채택하는 방식이며, 노동자에게 노동할 허가를 부여하는 노동허가제 방식은 유럽연합에서 유럽연합 국가간의 노동력이동에 사용하는 방식이며, 노동자를 채용하는 사업주에게 외국인력을 채용할 허가를 부여하는 고용허가제 방식은 독일, 대만이나 싱가폴 같은 국가에서 채택한 방식이며, 외국인력을 도입하되 정식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 신분으로 도입하는 산업연수제 방식은 일본과 한국에서 채택하는 방식이다. 때로 노동허가제와 고용허가제를 병행하는 제도도 있다. 노동허가제나 고용허가제는 국토는 넓지 않고 인구가 조밀하여 장기체류를 전제로 하는 이민 방식으로 외국인력을 받아들이는 것이 무리한 국가에서 한시적이며 순환제로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방식이다. 두 제도 모두 외국인력을 정식 노동자로서 도입하기 때문에 각국의 노동법이 적용되고 있다. 산업연수제는 외국에 진출한 자국기업의 현지인력양성이나 기술이전 등의 목적으로 본사가 소재한 국가에서 연수를 하게 하는 제도가 원래 제도의 취지이다. 이 제도를 취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과 한국으로, 일본의 기능실습제와 한국의 산업기술연수제가 바로 이런 취지의 제도이다. 산업연수제도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 이유는 이 제도가 원래 취지를 벗어나서 외국인력에게 기술연수가 이루어진다기보다 부족한 노동력을 도입하되 연수 명목으로 도입하여 사실상 노동력을 착취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측면 때문이다. 특히 한국의 산업기술연수제가 가장 적나라하게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다.
한국의 산업기술연수제는 1991년 해외투자기업의 현지인력 양성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는데, 1994년 해외투자기업연수제 외에 산업현장의 부족한 노동력을 이 제도로 도입하게 되면서 유입되는 외국인력의 양도 급증하고 그 문제점 역시 적나라하게 노정되었다. 이 제도는 현재에도 존재하고 있어, 최장 2년간의 비자가 발급되는 해외투자기업연수생(약칭 해투연수생)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농협중앙회, 수협중앙회, 건설협 등에서 필요인력을 명목상 연수생으로 도입하는 중기협연수생, 농협연수생, 수협연수생, 건설협연수생 등의 두 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산업기술연수제는 1994년 확대적용되던 그 시점부터 ‘연수는 없고 노동만 있는’ 표리부동한 제도-저임금 강제형 제도-인권침해유발형 제도-불법체류자 양산형 제도-비리유발형제도로 규정되면서 학계-노동계-인권운동계 쪽에서 격렬한 비판을 받아왔다. 국외에서도 ‘대한민국을 인권침해국가’로 규정짓게 하는 핵심제도였다. 그럼에도 산업기술연수생을 도입하는 기관에게 막대한 이익을 남겨주는 제도로 완강하게 존재해오다가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에 따라 2007년 1월1일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다만 해외진출기업의 현지인력양성의 목적인 해외투자기업연수제는 본래의 취지를 살려 존속되게 되었다.
고용허가제는 산업기술연수제의 문제점을 지속적으로 비판해온 학계와 민간의 주장이 정부에 수용되면서 만들어진 제도이다. 2000년 김대중 정권때부터 도입하려고 했던 제도였으나 산업기술연수제와 이해관계를 함께 하는 정부 일부부처와 민간 도입기관 및 사후관리 기관들의 완강한 저항으로 그 수명을 유지하였고, 2002년 노무현정권이 들어서면서 산업기술연수제 폐지와 고용허가제 도입을 주요 정책의 하나로 삼았으면서도 지지부진하다가 2003년 드디어 고용허가제 도입과 함께 2007년 폐지방침이 결정되었다. 산업기술연수제 폐지가 결정되기까지의 10여년의 기간은 수많은 인권침해사례의 보고, 수십 차례의 공청회와 토론회, 간담회, 캠페인, 집회 및 농성으로 점철된 기간이었다.
어쨌든 2003년 고용허가제가 도입됨으로 해서 한국의 외국인력제도는 고용허가제로 결정되고 현재 이 제도가 운영중이다. 고용허가제는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도입하는 제도로서 한국의 노동법이 전면적용되는 등 산업기술연수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제도이다. 그러나 고용허가를 받은 사업주와의 근로계약체결이 전제되어야만 한국입국 및 취업이 허용되는 제도로서 노동자의 사업주 종속성이 노동허가제보다 강한 점이 비판의 주요 사항으로 되고 있는 제도이다. 뿐만 아니라 아직 제도시행 초기에 해당하다보니 미숙한 운영시스템 및 외국인력도입과 관련하여 고질적인 병폐로 지적받고 있는 송출브로커의 문제 등으로 개선의 여지가 많은 제도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를 연수생으로 들여오는 제도’에서 ‘노동자를 노동자로서 들여오는 제도’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제도로서 평가받고 있다.
고용허가제가 실시되고 있기는 하지만, 고용허가제가 실시될 즈음부터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 미등록노동자의 문제는 고용허가제의 앞날을 좌우하는 중요한 문제로서, 현재도 미등록노동자의 문제는 작지 않다.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모든 나라에서 미등록노동자의 문제는 제도의 성패를 결정짓는 중대한 문제였다. 아무리 성공적인 외국인력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해도 ‘수요에 비해 압도적으로 우위를 점하고 있는 무한정의 공급’군으로서 유입의 기회만을 노리고 있는 미등록노동자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한 나라는 없다. 그러기에 대체로 전체 외국인력 중에서 10-15%정도로 미등록노동자가 존재한다면 안정적인 외국인력제도를 운용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2003년도 고용허가제를 실시하기 전에 전체 외국인력의 78.9%가 미등록노동자라는 이른바 ‘불법이 합법을 압도하는’ 상황이었고, 이런 전도된 상황을 제대로 바로잡기에 2003년도의 고용허가제 및 미등록노동자 정책은 역부족이었다. 고용허가제를 실시할 당시, 학계 및 민간에서는 78.9%에 달하는 미등록노동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고용허가제는 실패할 것이라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였고, 정부 역시 이런 문제의식에는 동의하였으나 실제 새로운 정책을 시행할 즈음에는 무려 35%에 달하는 미등록노동자의 문제를 강제추방이라는 채찍으로 성공할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예측을 뛰어넘어 새 제도가 도입되었는데도 불구하고 52%가 미등록노동자라는 결과를 야기했다. 과반수를 넘는 미등록노동자의 존재는 고용허가제의 정상적 운용을 위협하는 한편, 외국인력의 근로조건을 저하시키는 위협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거기에 미숙한 고용허가제의 운용시스템,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존속을 위하여 갖가지 방법을 동원되고 있는 산업기술연수제의 존재가 이에 가세하여 현재 한국의 외국인력제도는 여전히 낙관할 상황이 아니다. 고용허가제에 대한 논란이 무성하고 이에 대한 판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어찌되었건 현재 상황에서 한국의 외국인력제도는 고용허가제 시스템의 안정적 운용, 산업기술연수제의 조속한 폐지 및 산업기술연수제로부터 배태된 각종 ‘악의 축’들을 근절하는 문제, 미등록노동자의 현실적인 해결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한편 일반 타국적 이주노동자 외에 중국동포들은 특례고용허가제라는 다른 제도로 한국에 입국, 취업하게 된다. 이는 노동허가제와 비슷한 성격을 갖는 제도인데, 한국에 취업하고자 하는 중국동포는 일단 방문비자를 받고 입국한다. 한국에 입국한 후 법무부에서 취업비자를 받게 된다. 특례고용허가제로 입국하면 취업할 수 있는 업종이 건설업과 사회서비스업(개인간병-가사도우미-요식업 등)이 되는데, 이 업종에는 위에서 서술한 고용허가제(이를 특례고용허가제와 구별하기 위해 일반 고용허가제라고 한다.)로 입국한 이주노동자들은 취업할 수 없다. 그런데 특례고용허가제는 취업을 위해 비자를 변경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2006년 7월부터는 방문과 취업이 동시에 허용되는 H-2비자가 신설될 예정이다. 또한 필요한 외국인력을 해외동포에게 우선개방한다는 정부방침이 세워지면서 중국동포들은 제조업의 일부부분에도 취업이 허용되고 있다. 정부의 재외동포우선 도입 정책은 ‘동포우선’이라는 측면과 ‘혈통주의에 근거한 또다른 차별’이라는 양측면을 가지고 있어 논란의 소지가 되고 있다.

3.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은 어떤 조건에서 노동하고 있는가. 아마도 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에 대해서는 워낙 자주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어 웬만한 사람들은 한두 가지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장시간노동, 저임금, 다발하는 산재, 사업장내 폭언과 폭행, 여성노동자에 대한 성희롱 및 성폭행 등...일반인들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위에 열거한 문제들은 이주노동자의 노동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이주노동자의 건강한 노동생활을 옭죄이는 여건들은 수없이 많이 존재하고 있다. 무릇 노동과 자본이 이해관계를 둘러싸고 대치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어떤 계층의 노동자가 인류발전의 원동력인 ‘노동의 즐거움과 신성함’을 누릴 수 있겠는가마는, 이주노동자들은 그 중에서도 특별히 열악한 조건에 처해있게 된다. 외국인력을 받아들이는 어느 나라에서도 이주노동자들의 특별히 열악한 조건은 별 차이가 없다. 그 이유는 모든 유입국에서 가장 힘든 조건의 노동을 담당해줄 인력으로 외국인력을 선택하기 때문에 유입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모든 조건에서 이주노동자들에게 유입국의 어두운 측면들이 고스란히 투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1) 근로계약의 문제
고용허가제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먼저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이는 노동이 시작되는 첫 단추부터 현저하게 불리한 위치에 서게 됨을 의미한다. 국내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이주노동자들은 근로계약을 체결해야만 한국에 입국할 수 있다. 그러니 이주노동자입장에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이 된다. 이런 상황은 이주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지나친 악영향을 미칠 수 있고 이에 대해 정부는 표준근로계약서를 만들어 그에 의거해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하고 있다. 표준근로계약에 의하면 월 임금은 최저임금이상이며 근로기준법의 모든 조항을 적용하게 되어 있다. 그럼에도 근로계약을 둘러싸고 문제는 발생하게 되는데, 이는 한국에 입국하여 실제로 노동에 종사하게 되면 근로계약과 다른 내용으로 근로조건이 형성되기 때문이다. 또, 현행 법률에 의하면 근로계약은 비자기간과 함께 가고 있다. 근로계약이 1년을 단위로 갱신하게 되다보니 비자 역시 1년마다 갱신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사용자가 비협조적이면 근로계약을 갱신할 수 없게 되고, 법률상 규정된 사업장이동의 조건에 해당되지 않는다면 근로계약을 체결하기 힘들게 되고 이는 곧 비자연장이 불허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런 조건들은 임금 등 제반 근로조건을 결정하는데 이주노동자의 발언권이 매우 약화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 사업장 변경의 문제
고용허가제가 도입될 시 가장 많은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부분이 사업장변경의 문제였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사용자와의 고용계약을 전제로 한국취업이 허용되는데 이것이 사업장을 변경할 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 절차를 보자면, 고용사업주가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였거나 휴-폐업하였다면 이주노동자는 다른 사업장을 찾을 수 있다. 이외의 경우에는 일단 사업장 변경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또한 위의 사유라 할지라도 고용사업주의 동의가 있어야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다. 문제는 본국에서 고용계약을 맺을 때 기대했던 것과 다른 근로조건이 형성된다면 이주노동자로서는 당연히 불만을 가지게 되고, 혹은 취업하면서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사업장이나 업무에 적응하기 힘들다면 사업장을 변경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이럴 때 고용사업주가 사업장 변경을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옮길 수 없다. 만약 무단으로 사업장을 옮겨버리면 사업주의 신고로 미등록노동자 신세가 된다. 절차가 이러하다보니 예정했던 임금이 삭감되거나(삭감된 임금이 최저임금이상이라면 사업장변경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임금이 웬만큼 체불되었다든지(두달 이상 체불되지 않으면 사업장변경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 심각한 충돌이 있다든지, 작업장 환경이 열악하여 도저히 일할 수 없는 상황이라든지 하여도 사업장을 변경하기 힘들어진다.

사례) 어떤 여성이주노동자는 쓰레기 재활용회사에 채용되었다. 그런데 먼지가 많은 그 사업장에서 일하다 보니 피부병이 생기기 시작했다. 피부병은 매우 심각해져서 얼굴 전체에 피부병이 났다. 병원에서는 직장을 바꾸라는 말을 하였다. 이런 경우 피부병을 산재로 처리하는 방안이 있었지만 그 여성은 이를 몰랐고, 사업주는 사업장 변경을 동의해주지 않았다. 이 여성이주노동자는 사업장을 그만 두었고, 그때부터 미등록노동자가 되었다.

3) 임금
미등록노동자가 다수를 차지하였을 때나 지금이나 이주노동자를 가장 많이 괴롭히는 문제가 임금이다. 임금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문제는 체불과 근로계약과 다른 임금지급이다.
임금체불의 문제는 사실 별 대책이 없다. 사업주에게 요구하고 요구하여서 최대한 받아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의외로 많은 경우에서 근로계약과 다른 임금을 받고 있다. 근로계약체결 당시의 임금은 거의 다 최저임금이 기본급으로 설정된다. 임금계약의 기준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한 것은 이주노동자의 최저한의 임금을 보장하기 위해서인데 현실에서는 기본급의 기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각종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 책정되고 있다. 그나마 이 규정을 법대로 지킨다면 문제는 덜 발생할 텐데, 실제로 임금을 받고 보면 각종 수당의 계산이 잘못되고 있거나 심지어는 최저임금보다 더 높은 기본급을 주겠다고 근로계약을 체결하였는데, 정작 임금 지급때에는 그 임금이 연장근로수당을 포함한 임금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미등록노동자에게서 수시로 발생하던 퇴직금을 둘러싼 갈등은 고용허가제 노동자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는다. 퇴직금이 지급임금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든지 하여 최대한 퇴직금지급의무를 피해가려고 한다.

4) 근로시간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1일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하고 8시간을 넘길 수 없게 되어 있고(제 49조 1항), 1주당 근로시간은 44시간을 초과할 수 없게 되어 있다.(49조 2항) 그리고 연장근로시간은 당사자 합의하에 1주간에 12시간을 넘길 수 없게 되어 있다.(52조 1항) 또한 여성근로자의 경우 1주일에 2시간, 1주일에 6시간을 초과하는 시간외 근로를 시키지 못하게 되어 있다.(69조)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에게 이 조항은 무용지물 그 자체이다. 이주노동자들의 기본 노동시간은 대개 1일 10시간 - 12시간 사이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노동을 하는 사례도 드물지 않다. 토요일이라고 해서 예외가 아니다. 이 자체로 이들의 근로시간은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1주 최대 근로시간 56시간을 훌쩍 넘어서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연장근로를 제공하는 경우 역시 비일비재하다. 여성노동자의 경우 당연히 누려야 할 월 1회 생리휴가는 생각도 할 수 없고, 월차휴가. 연차휴가 등은 더더욱 생각할 수 없다.

5) 산업재해와 질병
한국어와 한국의 물정에 서툰 이주노동자들은 산업현장에서 발생하는 각종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될 우려가 그 누구보다도 높다. 특히 이들이 취업하는 업종이 영세업체, 3D업체, 사양업체, 공해유발업체라는 점이 이들이 재해를 당할 위험성을 더욱 높이고 있다. 어느 업체에서도 안전한 노동을 위해 안전장치설치나 작업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또한 이들을 작업에 투입하기 전에 충분히 안전교육을 시키는 경우가 없고, 안전한 작업을 위한 한국어교육을 충분히 시키는 경우가 없다. 중기협에서 도입하는 산업기술연수생이나 고용허가제로 취업하는 이주노동자들 공히 불과 2박3일간의 극히 형식적인 교육만 시킨 채로 산업현장에 투입하고 있는 것이 현 실정이다.
2002년 외국인이주노동자인권을위한모임에서 실시한 산재피해 이주노동자 실태조사결과에 의하면 이주노동자들의 산재발생의 주요 원인은 크게 4가지로 밝혀졌다. ① 안전장치 미비 - 대부분의 산재사고의 원인이었다. ② 안전교육 미흡-안전한 작업을 수행하기 위한 안전수칙조차 제대로 이수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심한 경우 취업 1시간만에 산재가 발생하기도 했다. ③ 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피로누적 - 1일 평균 10-12시간 노동. 13시간 이상 노동도 비일비재하고 야간작업만 전담하는 이주노동자가 적지 않은 근로조건은 이들의 산재발생을 부추기고 있다. ④ 한국어교육미비 - 언어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전수칙이나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질 리 없다. 이 실태조사는 2002년에 실시된 것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그로부터 3년이 넘은 현재에도 이런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당연히 산재발생이 줄어들 리 없다.
<표 1> 은 2005년 10월 1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노동부가 제출한 국정감사자료이다. 이에 의하면 최근 3년반 동안 8,555명의 이주노동자가 산재를 당하였다. 매일 7명씩 산재를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 표에 나타난 바를 봐도 이주노동자의 산재발생의 원인은 기본적으로는 산재발생을 유발하는 노후된 기계 및 사업장의 안전불감증이다.


사례) 몽골인 바기는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1시간만에 사고를 당했다. 그 사고로 손목의 인대가 끊어져서 수술을 받아야 했다.

6) 여성노동자의 문제
여성이주노동자들은 전체 이주노동자의 수의 약 1/3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들 여성이주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남성 이주노동자들보다 더 많은 노동시간에 임금은 더 적게 받고 있다. 이들에게 근로기준법상의 모성보호 조항은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다. 많은 여성이주노동자들이 남성과 같은 강도의 노동에 종사하기도 하고, 주야 12시간 맞교대로 작업하고 있기도 하며, 심지어는 야간에만 작업하기도 한다. 거기에 여성이기에 겪는 작업장내 성희롱, 성폭행 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7) 폭언과 폭행
이외에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장내에서 폭행과 폭언에 시달리고 있다. 폭행은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동정적인 여론에 힘입어 예전보다는 많이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사업주. 관리자. 동료 한국인노동자 등에 의한 폭행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폭언과 비속어 사용 등은 많은 공장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특별히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거친 현장문화에서 기인한 바 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폭언과 비속어를 듣는 이주노동자들이 받는 심리적 상처는 결코 작지 않다.

사례) 몽골인 샤기가 한국인 동료에게 얻어맞아 상담하러 왔다. 문제의 발단은 샤기가 몽골에서 용접기술을 배워와서 아주 빨리 업무에 익숙해졌고 성실하기까지 하여 열심히 일한다는 데 있었다. 샤기의 옆에서 일하던 이 한국인동료는 샤기가 열심히 일하여 목표달성을 일찌감치 하면 ‘왜 이렇게 일을 빨리 하느냐’라고 하고 야간작업도 열심히 할라치면 ‘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느냐’며 시비를 걸더니 급기야는 마구 샤기를 팼다.

8) 일상생활에서의 문제
사람으로서 살아가노라면 많은 법적인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 이주노동자들도 마찬가지인데, 언어와 한국 물정에 서툰 이들이 특히 민.형사상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들이 겪는 불이익은 이주노동자 인권센터에 심심찮게 접수되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민형사문제 발생시 권리보장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점이다. 절차도 이해하기 힘들거니와 설사 안다고 해도 한국인도 엄두를 내기 힘들어하고 시간과 돈의 문제로 법적 권리를 찾기 힘든 형펀인데 외국인의 경우는 오죽하겠는가. 불법체류자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욱 심하여 때로는 자신이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로 둔갑하거나 쌍방과실로 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일단 형사상 문제가 발생하여 경찰에 연행되는 불법체류자는 설사 자신이 피해자임이 입증된다 하더라도 강제출국된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불법체류자들은 사기, 폭행, 사고 등을 당하여도 제대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때로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에서 이들의 불이익을 해소해주고자 적극 노력하여도 정작 당사자가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9) 문화충돌
어느 나라나 현장문화는 거칠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장문화는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무엇보다 ‘술 권하는 문화’가 일조를 하는 것 같다. 술 마시는 것이 그리 문제되지 않는 국가에서 온 이주노동자라면 몰라도 술을 금지하는 이슬람국가에서 온 사람들은 한국의 술 권하는 문화가 매우 괴롭다. 거기에 보통 한 달에 한번정도 갖는 회식시간이 되면 먹어서는 안 되는 돼지고기를 권한다든지, 한국인도 먹기 힘든 쇠고기를 사줘야하는 것에 대해 화를 낸다든지, 바다가 없어 해산물 먹기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회를 먹으라고 강권한다든지 등등 한국인들이 무심코 행하는 한국의 문화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는 고통을 안겨주는 경우도 많다. 각국의 문화적 차이야 어찌할 수 없는 것인데 문제는 이주노동자들의 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이해정도가 너무 낮다는 것이다.

10) 사회보장의 문제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로는 산재보험,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4 가지가 있다. 이 중 국민연금의 경우 상호주의에 입각해 적용되므로 국민연금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들은 상당히 있다. 중기협 연수생은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고, 연수취업생은 산재보험,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있고 고용보험은 원칙적으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해외투자기업연수생은 산재보험만 적용되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취업하고 있는 이주노동자에게는 상호주의가 적용되는 국민연금을 제외한 나머지 보험이 모두 적용된다. 그러나 고용보험과 국민연금을 둘러싸고 이주노동자에게 이 제도를 적용하는 것이 적절한가에 대해서 논란이 있어 두 제도는 폐지될 가능성이 높다.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에게는 사회보장제도 중 산재보험만 적용되고 있다.
모든 이주노동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사회보장제도는 산재보험이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해외투자기업연수생의 많은 수가 산재보험이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으며 잘해야 상해보험적용 정도이다. 사업주가 산재가 발생해도 산재보험적용을 회피하기 때문이다. 산업기술연수생의 경우에도 종종 산재보험 미적용의 사례가 발견되며, 불법체류 이주노동자의 경우 산재피해자의 약 60%만이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고 있다.
고용허가제로 취업중인 이주노동자의 경우, 산재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공상으로 처리하는 사례가 발견되고 있으며 건강보험의 경우에도 사업장이 아예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는 곳도 상당수 있고 이주노동자만 건강보험적용을 하지 않는 경우들도 있다.
불법체류자의 경우 건강보험 미적용으로 인한 애로사항이 매우 심각한 상태이다. 한국인보다 2배-2.5배 가량의 비싼 의료비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에 쉽사리 의료기관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다. 이로 인해 작은 병을 키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제도에서 소외되어 있는 불법체류자의 질병치료를 덜어주기 위해 아예 이주노동자 인권단체에서 이를 전담하는 단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한국이주노동자건강협회’와 같은 단체에서 사적 보험의 형태로 이들의 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또한 웬만한 큰 규모의 단체에서는 무료진료소를 설치하여 간단한 검진과 치료는 무료로 해주기도 한다.

4. 상품이 아닌 사람으로서 이주노동자들을 보아야.

이상 간략하게나마 한국의 이주노동자들의 노동생활을 살펴보았다. 일반적으로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으로 유입되는 배경에는 이주노동자 자신들의 ‘생활향상의 욕망’이 기본적으로 깔려있지만, 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들을 불러들이는 한국의 경제, 사회상황이 이면에 존재하고 있다. 이처럼 상호간의 이해관계가 무난하게 합치된다면 참으로 바람직할 것이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저개발국가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데 대한 경제우선 의식, 한국인보다 검은 피부를 가졌다는 데 대한 저열한 인종차별의식, 시행과정중에는 많은 반발과 애로사항이 뒤따르지만 한국사회의 현상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필요한 산업구조조정을 시행하기보다 ‘당장 먹기 좋은 떡’을 마련해주고 만 한국정부의 안일한 산업 및 인력정책은 오늘날 40여만명이 넘는 이주노동자집단을 우리 사회의 가장 열악한 소수자그룹중의 하나로 만들었고, 그 와중에서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고통받고 있다. 무엇보다 ‘상품이 아닌 사람’으로서 이들을 대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마치 ‘상품을 구입하듯이’ ‘리콜하듯이’ 이들을 대하는 한국의 외국인력정책은 앞으로도 많은 문제들을 야기시킬 것이다. 말로는 지구촌, 세계화를 운운하면서, 세계 속의 한국과 ‘한류’의 열풍에 뿌듯해하면서 정작 가장 가까이에 있는 이주노동자들을 홀대한다면 아무리 수많은 예산을 투자하여 ‘한류의 열풍’을 지속시키려 한들 그 효과가 제대로 나올 수 있겠는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미래세대를 위해 아무리 많은 예산을 투자해도 그 효과는 반감될 것이다. 지금이라도 이들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이들의 노동제공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이득을 보고 있는지, 이들이 우리 사회의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해 거듭거듭 생각하고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곧 우리 사회를 위한 길이다.


 


제목: 국제결혼가정 자녀들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방안(2006.3.7)


우리 속에 존재하는 그들!
(한분수/ 2006. 3.7. 건국대 학보에 게재)


최근 들어 유난히 국제결혼가정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그 관심의 범위도 다양하고 비교적 넓어서, 외국인배우자의 한국적응-한국의 결혼문화에 대한 자성-그들의 2세의 문제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제 국제결혼과 그로 인해 형성된 가정을 둘러싼 제반 사항들은 3-4년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웠던 사회적 이슈가 되어가고 있다. 본래 순혈주의가 우세한 한국사회에서 외국인과의 결혼에 대한 이미지는 그리 좋지 않았다. 먼 역사는 차치하고 일제 식민지 시대, 해방 이후 미군의 한국 내 주둔으로 빚어진 여러 문제들로 한국의 현대사에서 외국인과 한국인과의 접촉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았다. 당연히 외국인과의 결혼은 쉽게 용납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특히 한국여성과 외국인 남성과의 결혼은 남성우월주의의 사회분위기와 제도 속에서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사회적으로는 물론 친지들 사이에서도 배척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시대는 바뀌어, 오늘날 지구촌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각국인들의 왕래는 활발하고 타국에서 취업, 거주하는 경우가 그리 신기하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한국 역시 이러한 흐름을 타고 수많은 한국인들이 타국에서 생활하고 역으로 수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88 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보수적이던 한국입국의 문호가 대폭 개방되면서 대거 들어오기 시작한 외국인들 중 일부는 외국인노동자로서 아예 한국에 장기간 정착하게 되고 자연히 한국땅에서 가정을 꾸리는 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한번 물꼬가 트이기 시작하자 국제결혼을 하는 수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1990년에 4,710건에 불과하던 국제결혼 사례가 1995년 들어서부터 13,494건을 기록하면서 급증하고 이후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2003년도에는 25,658건으로 사상 최대의 증가를 보였다. 이제는 농촌에서는 4명중 1명의 한국인이 외국인과 결혼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인과 결혼하니, 그 다음은 당연히 이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를 보면 2005년 5월 현재 외국인노동자 중 취학 연령대 자녀(7세 이상 18세 이하)를 1만7천3백명으로 추정한다. 이중 외국인학교 재학생 7,800명을 제외하면 국내학교 유입가능 인원을 약 9,500명으로 본다. 그러나 현재 국내 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은 1,500여명에 불과하고 나머지 8,000명이 넘는 외국인 자녀들은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통계에 반영되어 있지 못한 미취학연령대의 자녀들과 불법체류자의 자녀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위 수치의 2-3배 정도의 혼혈아동들이 이 땅에서 우리와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의 존재는 그 동안 한국사회의 인권지수의 척도로서 여러 번 조망되었던 외국인노동자와는 또 다른 의미로 한국사회에 무언가를 던져주고 있다. 그리고 한국 사회는 단군 이래 유례가 없었던, 피가 섞인 이들과 한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야만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은 어떤 경위로 해서 한국땅에 거주하게 되었는가에 따라 성장환경 및 교육환경이 사뭇 다르다.


먼저, 가장 많고 앞으로도 가장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부분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는 한국인남성-아시아국가의 여성 사이에서 태어나는 2세들이다. 부모의 결혼이 일반적 상식에 부합하는 정상적 결혼이었는가는 별도로 하고, 어쨌든 그 2세들은 당당하게 한국국적을 가진 한국인이다. 이들은 국제결혼 2세들 중에서 가장 여건이 나은 편이라고 하겠다. 한국인이고, 한국인이면 당연히 누려야 할 사회보장제도며 교육제도의 혜택을 받을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그렇긴 하지만 보통의 한국인 부모를 둔 아동들에 비교하여 볼 때 이들에게는 남다른 애로사항들이 있다. 한국의 교육이 맹목적일 정도로 성적우선인 것은 공지의 사실이다. 그리고 자식교육의 1차적 의무자는 어머니이다. 그런데 외국에서 시집온 이들의 어머니는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하기가 정말 어렵다. 어머니 자신이 한국어는 물론 한국상황에 적응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 처해있다. 외국인어머니가 자신이 본국에서 성장하면서 배우고 깨달은 것들이 한국생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가능하면 본국의 문화와 생각을 빨리 잊어버리고 ‘한국사람처럼’ 되어야 ‘잘 적응하고 산다’고 평가받는다. 이처럼 자신이 한국문화에 적응하느라 힘겹다 보니 아이의 교육이 여느 한국어머니처럼 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아이와 한국어로 대화할 수 없으니 아이의 언어발달은 더딜 수밖에 없고, 아이의 숙제를 봐줄 수 없으니 아이의 학교성적이 오르지 못한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식과의 다양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못하니 어머니가 본국의 인생에서 깨달은 삶의 지혜는 자식에게 전달될 길이 없다. 거기에 더하여 매매혼으로 비난받고 있는 국제결혼 알선업체를 통해서 결혼하여 남편이나 시집식구들이 ‘돈 주고 사온 여자’ 정도로 취급하는 분위기가 가정내에 흐르고 있다면 아이의 어머니에 대한 이미지가 어떠할지 보지 않아도 짐작이 가지 않는가.


두번째, 부모 중 한쪽이 불법체류하다가 한국인을 만나 결혼하여 출생한 아동들이 있다. 이들의 경우에는 불법체류중인 한쪽 부모가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고 일단 합법적 비자(동거비자)를 받게 되면 합법적으로 체류하게 된다. 그러나 합법적 비자를 취득했다 해서 한국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한국국적을 취득하기까지는 최소한 2년의 시간이 필요하게 되고 그 때까지 외국인배우자는 동거인이 된다. 그래도 한쪽 부모가 한국인이다 보니 당연히 사회보장제도며 교육제도의 혜택은 받을 수 있다. 때때로 자녀는 있는데 정식으로 혼인신고가 되지 않아 부모 중 한쪽이 여전히 불법체류 상태에 있다가 그만 덜컥! 불법체류자 단속에 걸려버리는 수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예외없이 본국으로 추방되며, 이때 양 국가에서 정식으로 혼인신고를 하면 동거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다시 들어올 수는 있다. 아이의 입장에서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아빠나 엄마가 사라졌다가 몇 달 뒤에 다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살다가 부모가 이혼을 하게 되면 상황은 매우 어려워진다. 외국인과 결혼한 한국인이 아이를 상대방에게 맡겨두고 가버리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자신조차 한국사회에서 생활하기 위해 하루 10-12시간노동에 저임금으로 아등바등해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서 자식양육이나 교육이 어떻게 원만하게 이루어지겠는가.


세번째, 부모 모두 국적이 다른 상태에서 한국에 불법체류하다가 결혼하여 출생한 아동들이 있다. 또는 부모가 국적이 같긴 하지만 한국에 불법체류하면서 출산하여 한국에서 성장하고 있는 경우이다. 딱하게도 이런 아동들은 부모와 같은 불법체류자이면서 동시에 본국의 국적도 취득하지 못하여 무국적자인 경우가 된다. 이들은 부모 중 한 쪽에 귀국하여 본국에서 성장하게 되기도 하지만 부모의 사정이 여의치 못하면 아기만 본국의 가족들에게 보낸다든지 혹은 아예 한국에서 무국적자로서 성장하게 되기도 한다.


네번째, 부모가 국제결혼을한 것은 아니지만 부모 양쪽 모두 불법체류하는 외국인노동자이면서 한국에 자신의 자녀를 데려와 함께 살게 된 경우가 있다. 이 경우의 아이들은 부모와 마찬가지로 불법체류 상태이다. 이 아이들은 한국의 사회보장제도며 교육제도며 모든 사회적 시스템에서 배제되게 된다. 그러다보니 이 아이들에게 어떤 애로사항이 생기면 그것을 민간단체의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민간단체의 시스템에 의존할 수 있다면 다행인데 잘 몰라서 혹은 상황이 그렇지 못해서 그 조차도 여의치 못할 경우 고스란히 방치되게 된다.


이 중 세 번째, 네 번째의 경우, 아동들에게는 불법체류중인 부모의 불안한 생활을 고스란히 투영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부모 한쪽 혹은 양쪽이 불법체류자로 단속되어 본국으로 추방되고 아이만 남겨지는 경우도 생기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은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한다. 언제 단속반이 들이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임금체불이며 산재같은 상황이 다반사로 발생하는 한국에서 한국어도 잘 모르는 부모에게 그런 일이 닥치면 한국어를 잘하는 아이가 부모를 위해 통역을 해준다. 어린 나이에 너무 일찍 세상사에 눈뜨게 되는 것이다. 그 뿐인가. 부모 모두 장시간 노동에 종사하다 보니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조금 성장한 뒤에는 부모를 대신하여 직업전선으로 내몰리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동들이 ‘보호받아야 하고, 교육받아야 하는’ 아동으로서의 사회적 권리를 어떻게 누릴 수 있겠는가.


위에서 서술한 바대로 국제결혼가정의 2세들은 부모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가에 따라 성장환경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나 이들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작용하는 환경도 있다. 그것은 바로 경제적으로 저개발국가에서 온 부모(양쪽이든 한쪽이든)를 둔 한국인과 다른 피부색을 가진 혼혈아동에 대한 차별적 분위기이다. 왕따나 ‘너네 나라 돌아가’‘너네 나라 거지지’라는 언어폭력은 이들이 자주 겪는 차별이다. 어느 사회나 이방인을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데 진통을 겪지 않은 사회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백인종과 유색인종에 대한 호불호가 분명하면서 군사주의적, 권위주의적 문화가 아직도 배경으로 존재하고 있는 사회에서 그 진통들은 이방인에게 폭력으로까지 작용한다. 그러나 이는 한국사회를 위하여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구촌이라는 말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는 시대에 살면서, 수많은 한국인들이 외국에서 취업-거주하고 있으면서, 다양성과 자유로움, 민주주의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 정작 지구촌에서 온 사람들에 대해 차별한다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이제 한국인들은 더 이상 학원에서 외국인을 접하고 극소수 한국인으로 귀화한 신기한 외국인, 혹은 한국 땅에 돈을 쓰러 오는 관광객들로서만 외국인들을 만나지 않는다. 가게손님, 내가 채용한 사람, 동네사람을 넘어서서 내 가족, 내 아이의 급우, 내 친구의 친구, 친척으로서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접하게 된다. 이제 조금 더 지나면 국제결혼 가정의 2세가 나의 며느리, 사위가 될 수 있는 상황이 열릴 것이다. 이런 상황은 한국사회에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즉, 단일한 혈통을 가진 단일민족이라는 한국민족의 정체성과 단일한 문화권, 단일한 언어를 구사하는 한국문화라는 기존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개념의 민족, 새로운 개념의 가족, 나아가 다문화, 다언어의 공존으로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역사적으로 다른 민족과 사이좋게 살아본 집단적 경험이 별로 없는 사회이다. 오히려 타민족으로부터 침략과 피해를 받은 집단적 경험과 사회적 학습을 압도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사회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는 사회적 약자,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보호를 위한 제도마련, 인식의 개선 등이 아직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미 한국사회와 한국민들은 새롭게 전개되는 상황을 바람직하게 수용해야 하는 사회적 의무를 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 사회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서술하면서 이 글을 마친다.


(1) ‘우리 친구 아이가!’로 대표되는 우리의 문화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한국문화의 특징으로 ‘뿌리 깊은 우리의식’ ‘패거리문화’ ‘연고문화’ ‘인맥중시’ 문화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같은 그룹에 속하지 않는 타인에게 배타적으로 작용하고 심하게는 폭력적으로까지 나타나기도 하는 이런 류의 문화는 첫번째로 지양해야 할 문화이다. 나아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스며들어 있는 군사주의적 성향을 띤 문화, 권위주의적 문화 역시 지양해야 할 문화이다. 군사주의적 문화와 권위주의적 문화는 강자에의 복종과 함께 약자에 대한 억압을 동시에 낳고 있으며 우리 사회의 다양성을 억제한다. 이런 한국사회의 문화적 특징들을 지양해 나가는 과정은 지구촌 시대에 열린 마인드를 갖게 하는 과정이다.
또한 순혈주의에 기초한 민족주의에 대한 자성이 필요하다. 민족주의적 가치는 피지배자나 피해자, 약자의 입장에서는 “선”이 될 수도 있지만, 지배자나 가해자, 강자의 입장에 서는 민족주의는 파시즘, 인종주의 등과 결합하면서, 엄청난 사회적 “악”을 배태하기 쉽다. 이 점은 나찌 등 파시스트의 역사적 폐해를 생각하면 쉽게 확인된다고 하겠다. 이제 우리 사회는 가해자의 입장에서 나타나는 민족주의적 의식이나 태도의 부정적 측면을 비판적으로 점검, 확인하면서, 단일민족주의 등을 기초로 짜여진 우리 사회의 문화적 토대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야 한다.


(2) 약자, 소수자집단을 위한 권리옹호정책 및 우대정책을 세워야 한다.
한 사회의 민주화 정도나 문화적 성숙도의 척도는 그 사회가 약자. 소수자에 대해 과연 어느 정도의 권리옹호 정책이나 우대정책을 실현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많은 인권선진국에서는 약자, 소수자에 대한 우대정책을 실시해 온 역사적 경험이 축적되어 있지만, 불행하게도 아직 우리 사회에는 이런 역사적 경험이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고 또한 그 성과가 공유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다 보니 국제결혼 가정 및 외국인노동자들까지 포함한 소수민족에 대한 제도적 우대 정책에 대한 사회적 전망조차 부재한 실정으로 판단된다. 그토록 수많은 사례가 보고되어 있어 빠짐없이 인권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인데 최근 들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국제결혼가정의 자녀들에 대해서는 말해 무엇하랴.


(3) 사회적 시스템의 마련과 정비가 필요
하드웨어라고 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의 마련과 정비가 필요하다.
우선 몇 가지만 예를 든다면,
모든 아동은 교육받을 권리가 있다는 점에서 아이의 체류자격이 합법이든, 불법이든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어머니를 둔 아동을 위해서 학습능력이 저하되지 않도록 하는 배려가 필요하다.
학령기에 한국으로 입국한 아동일 경우에는 한국어학습을 위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다.
부모 중 한쪽이 외국인일 경우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기회도 제공해주어야 한다. 그것은 한 가정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다문화사회로 접어들어간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부모가 이혼하여 외국인부모에게서 성장해야 할 경우 단순히 한부모자녀로서만이 아니라 한국생활이 익숙지 않고 생계가 막연해질 수 있는 외국인부모라는 점을 감안하여 보다 종합적인 배려가 필요하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벌어질 수도 있는 ‘집단적 따돌림’에 대해서는 교육과 상담 등 사전사후적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한다.


(4) 민주주의와 합리적 사고를 배양할 수 있는 교육 필요
잘못되거나 미흡한 법과 제도는 그나마 고치면 된다는 해결방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법과 제도만으로는 부족하다.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이들을 이방인이 아닌 이웃의 주민으로 인정하고 우리와 다른 그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왕도가 따로 없다. 상대를 동등한 인격체로 인정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 합리적 사고를 배양할 수 있는 교육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더욱 중요하다. 이들에게 이 땅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은 성인들이 받아들이듯이 어느 날 갑자기 내 삶에 끼어 들어오는 그런 낯선 존재들이 아니다. 이미 수많은 혼혈아동들이 학급의 급우이고, 내 친구의 친구이고, 내 친척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아직 편견이 형성되지 않았거나 고착되지 않은 청소년들에게 이들과 소통하고 공존하는 원리를 교육시키는 것은 다민족. 다문화사회를 위해 특별히 중요하다. ‘피부색을 이유로 한 따돌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방법이다.\


 


제목: '우리 친구 아이가!'에서 배제되는 사람들(2006.3.)


** 동북아 연대 '소수자로 산다는 것'에 게재한 글 **


‘우리, 친구 아이가!’에서 배제되는 사람들


석원정


어린 소년이 있었다. 아버지는 한국에 주둔중인 흑인미군이었고 어머니는 한국인이었다. 아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고국으로 돌아갔고 어머니는 졸지에 홀어머니가 되어 아이를 키워야 했다. 배운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는 어머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 고되게 몸을 놀려야만 했다. 어머니는 아이의 교육에 신경 쓸 시간도 없었고 괜찮은 학원에 보낼 수 있는 돈도 없었다. 좋은 옷, 좋은 신은 그림의 떡이었다. 동네아이들은 부자도 아니고 까만 얼굴에 곱슬머리 아이와 어울리기 싫어했다. 아니 부모들이 싫어했다는 것이 더 정확하리라. 아이가 학령기가 되자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련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어머니는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했다. 그러나 아이를 선뜻 받아주는 유치원은 찾기 어려웠다. 초등학교를 들어가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가난과 눈에 띄는 외모 덕분에 아이는 늘상 왕따를 당해야 했다. 민감한 사춘기를 보내면서 마음에 맞는 친구를 사귀기도 힘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공부에 전념하기란 쉽지 않았다. 공부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니 학교생활이 더더욱 잘 되기 어렵다. 그래도 꾸역꾸역 고등학교를 마쳤다. 그나마 심지가 굳은 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흔해진 대학도 가정형편 때문에 가기 어려웠다. 대학을 가지 못한 청년은 이제 한국의 청년이라면 모두가 가야 하는 군대를 가야했다. 그러나 신체건강하고 정신적으로 이상이 없음에도 청년에게는 아버지가 한국인이 아니라는 이유로 군대갈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군대도 거부하는 청년. 취직을 하려 하니 한국 땅 어디에서 선뜻 받아주랴. 대학도 못나오고 군대도 못 가고 집에 돈도 없는 청년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남들 가지 않는 공장에라도 가서 일하려고 하면 공장에서는 외국인노동자 취급을 받았다. 아니 그보다 못한 취급을 받았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은 수가 본국에서는 고학력자들이었는데 청년은 그렇지도 못하니 말이다.
청년이 혹시 두뇌가 우수했다면 자칫 범죄의 길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고, 혹시 잘 생겼거나 음악적 재능이 좀 있다든지 했면 운좋게 연예인으로 풀릴 수도 있었을 것이나 그저 그런 경우라면 잘해야 작은 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밥벌이를 할 것이고, 잘못 되면 사회부적응자가 되어 외롭게 사회와 부모를 원망하면서 살게 될 것이다. 만약 이 청년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둘이 아무리 사랑해서 결혼을 약속했다 해도 아가씨쪽 집안에서는 완강하게 청년과의 결혼을 반대할 것이다. ‘튀기를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미군 흑인과 결혼했으니 그 어머니가 무슨 일을 했을지 뻔하지 않느냐’ ‘군대도 못가고 제대로 된 직장도 구하지 못한다’는 등등 가족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뭐 특별한 것이 아닐 것이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먼저 떠올릴 이유들이니까. 이 청년이 미국에서 살았으면 미국 사회는 이 청년이 어떻게 살든 간에 한국계 미국인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미국계 한국인이라는 말조차 없다. 이 청년의 사회적 이름은 혼혈인이다.


남의 일이 아니다. 얼마 전부터 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는 미국 프로풋볼 슈퍼볼 MVP 하인즈 워드가 한국에서 그대로 성장했더라면 어떤 세월을 보냈을까를 재구성해본 것이다. 그나마 상당히 온건하게 재구성한 것이다. 요즘은 ‘양공주’니 ‘튀기’니 라는 말은 공공연하게 사용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또 다른 청년의 사례.
조상은 한국에서 120여년이 넘게 생활해왔다. 중국에서 이주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한국에서 뿌리를 내려왔다. 그러나 뿌리를 내려왔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인인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외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의 출입국관리법의 적용을 받고 있고 영주권 제도가 없는 한국에서 5년마다 체류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나마 나아져서 5년마다이다. 전에는 2년마다 체류허가를 받아야했다. 교육? 별도로 설립된 학교에서 학업을 마쳤지만 한국 교육인적자원부로부터 정식학교로 인가받지 않은 학교이다 보니 대학진학을 하려면 검정고시를 치러야 한다. 다행히 얼마 전부터 각종학교로 인정받아 좀 나아졌다. 그러나 학교의 여건은 그리 좋지 않다. 본국에서 특별한 재정지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학교에서는 본국에 관한 교육을 주로 받는데 그래서는 한국사회에서 제대로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럭저럭 학교를 졸업하여 취직을 하려 하니 직업도 맘대로 선택할 수 없다. 공무원이나 공공단체의 임직원이 될 수 없고 변호사니 공인회계사니 같은 국가인정자격부문의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 일반 기업체 취업도 어려웠다. 뿐만이 아니었다. 성년이 되어 자신의 명의로 통장을 개설하려 하니 청년과 가족 모두 같은 주민등록번호를 받기 때문에 매우 불편했다. 약간의 재산을 모은 부모의 도움으로 작은 사업을 해보려 했지만 이 역시 각종 허가며 제약들이 만만치 않았다. 어디 외곽으로 빠져서 펜션과 같은 신종사업을 해보려 했지만 외국인이다 보니 토지나 부동산 구입 등에도 제약이 있었다. 결국은 사업을 포기했다. 마침내 청년은 부모나 친척들처럼 어디 목 좋은 곳에서 중국음식점을 열 궁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외국에서는 중국계 00인 하면서 경제감각이 탁월하고 상재가 뛰어나다고 어디서나 인정받는 혈통이지만 한국에서만은 예외다. ‘중국계 한국인’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이 청년의 사회적 이름은 화교이다.


외국인노동자 상담을 오랫동안 하다보면 혼혈인을 포함하여 우리 혈통이 아닌 이들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라지게 된다.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한국사회의 처우를 생각하다보면 그 시작으로 화교나 혼혈인들의 처우로 생각이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은 외국인노동자와 그 자녀들의 과거이면서 현재이고 더 중요하게는 미래이다. 사회학적으로 이들을 통칭하여 소수자라고 부른다. 소수자라는 용어에는 단지 숫적으로 다수자가 아니라는 것만이 아니라 종합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특히 다수자와 혈통이 다른 이들은 소수자 중에서도 소수자에 속한다. 어느 사회나 소수자에 대한 대접은 그리 녹록치 않지만 한국처럼 유난히 혈통을 강조하고, ‘우리, 친구 아이가!’가 인간관계에서 최우선의 덕목으로 꼽히는 한국 사회는 더더욱이나 그러하다. ‘친구’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 수많은 이들 중 한국보다 경제적으로 덜 발전한 국가에서 온 검은 피부색의 이들에게 한국 사회의 이러한 덕목은 소외감을 넘어서 많은 경우 폭력으로까지 인식된다. 그런 사례들을 외국인노동자들에게서 수없이 발견하게 된다.
이 땅에서 무위도식하면서 국가예산을 축내는 것도 아니고, 범죄를 저지르며 사는 건 더더욱 아닌데, 한국사람들은 가려하지 않는 공장에서 하루 10-12시간씩 일해주고, 한국인이라면 그 노동의 대가로는 결코 정당하다고 말하지 않을 저임금을 받고, 그 임금의 절반 이상은 또 이 땅에서 소비하면서 이 나라 경제에 보탬을 주면서 살아갈 뿐인데 우리는 참 많은 가슴아픈 사례들을 이들에게서 접하고 산다.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고 알뜰하게 살아도 ‘못 사는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라는 낙인을 떼어버릴 수 없다.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경제적으로 못 산다’는 것이 ‘인종적으로도 열등하다’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못지않은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한때는 화려했던 문화를 꽃피웠고 지금도 엄연히 문화국가의 반열에 넣어도 손색없을 수많은 유산들을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들 역시 한국땅에서는 ‘덜 된 문화’로 치부되곤 한다. 나아가 자연과학적 현상까지도 그 나라들에서만은 달라진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지구 어느 나라나 하늘의 해와 달은 하나인데, 외국인노동자의 본국에서는 해와 달이 없는 듯이, 혹은 몇 개나 되는 듯이 여기기도 한다. ‘너네 나라에도 달이 있니?’라는 질문을 받고 어떤 미얀마 출신 노동자는 ‘우리나라에는 달에 서너 개 있다’고 대답을 했다고 한다. 그랬더니 한국인이 정말 그런 줄 알더라는 것이다. 그에 비하면 ‘너네 나라에도 TV가 있니?’라든가 ‘너네 나라에도 과일이 있니?’ 라는 질문은 오히려 정상적인 질문같이 여겨진다. 비록 꼬박꼬박 반말이긴 하지만 말이다.


2002년에 국가인권위원회의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냄새난다는 이유로 수모를 당한 외국인노동자의 사례가 한둘이 아니다. 오죽하면 어떤 한국인이 전철에서 외국인이 앉아있는 옆자리에 앉았더니 그 외국인이 내리면서 ‘내 옆에 앉아줘서 고맙다’는 말을 남겼겠는가. ‘한국인들은 체취가 나는 검은 피부의 외국인 옆에는 앉지 않으려고 한다’ 라고 한국인의 매너 없음을 항의하는 것보다 더 우리의 가슴을 치는 말이다.
어디 개인만인가. 혹시 자녀를 동반하고 한국에서 취업중인 이들에게는 자식의 불안한 미래가 더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안겨 된다. 학령기의 아동들이 학교에 입학해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학부모들의 항의를 달랠 수 있는 교장선생님의 결단과 급우들의 특별한 배려, 당사자의 상처받지 않을 튼튼한 심장이 필수적으로 필요해진다. ‘니네 나라로 돌아가’ ‘너네 나라 거지지’ 라는 편견과 왕따에도 꿋꿋하게 버티면서 학교생활을 마치려면 말이다. 한국어능력 때문에 학년을 낮춰서 공부해야 하고, 그러다보니 본국에서 아무리 총명하였다 해도 한국에서는 그 총명함을 꽃피우기 힘들다. 그나마 이런 기회가 주어지는 아동들은 행운아들이라고나 할까. 10대 중반까지만 해당된다. 많은 소년소녀들이 학습할 기회와 여건이 주어지지 않아 부모가 일 나간 사이에 거리를 방황하거나 어린 나이에 부모처럼 노동현장으로 내몰린다. 이들의 미래가 어찌될 것인가를 예측하기 위해서는 굳이 전문적인 사회학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어떤 유난히 보얀 피부를 가진 한국인 처녀가 동남아시아 국가 출신의 성실하고 핸섬한 청년과 결혼해서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아기는 엄마를 닮아서인지 아기 치고도 유난히 보얀 피부를 가졌다. ‘딸내미가 피부가 아주 하얗고 예쁘네요’라는 말에 아기 엄마 왈 ‘하얘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늘어나면서 자연히 외국인과의 결혼도 급증하고 있다. 이어서 그들의 2세도 늘어나고 있다. 그런데 검은 피부색을 가진 외국인배우자들 중에는 아이가 장성하기 전에 제3국으로 가서 살겠다는 이들이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이구동성으로 ‘한국에서는 살기가 너무 힘들잖아요’라고 말한다. ‘차별이 너무 심해서요’ 라고 덧붙인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 사랑하는 사람의 가족들로부터 냉대를 받은 경험들을 가지고 있다. ‘처음엔 대접을 안해 줬지만 이젠 괜찮아졌어요’라고 빙긋이 말하는 이들 검은 피부색의 외국인배우자들은 정말 괜찮아져서 그렇게 말하는 것일까.
외국인여성배우자들은 어떨까. 통계를 보면 농촌총각 4명중의 1명이 외국여성과 결혼한다는데, 유난히 육아와 아이의 학교성적에서 엄마의 역할이 강조되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이중, 삼중으로 괴로워진다. 자신이 본국에서 성장하면서 배우고 깨달은 것은 한국에서의 가정생활, 육아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가능하면 그런 것들을 잊어버리고 빨리 한국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잘 ‘적응하고 산다’고 대접해준다. 자신의 힘겨움은 둘째다. 다행히 좋은 남편, 좋은 시집식구들을 만난다 하더라도 자신이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적응하느라 힘겹다 보니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주지 못하고, 아이의 숙제를 봐주지 못해서 아이들의 학력수준이 떨어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만 한다. 그런 상황에서 엄마의 나라가 얼마나 아름다운 산천을 가졌는지, 얼마나 자연조건에 꼭 맞게 사회의 모든 문화가 적응되어 있는지, 비록 가난하지만 얼마나 인정이 넘치고 깊은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를 아이들에게 결코 전해줄 수 없다. 아이에게 그런 나라 출신의 엄마에 대해 자부심을 갖게 해줄 수는 더더욱 어렵다.


갑작스럽게 ‘우리, 친구 맞지?’라고 되묻고 또 되묻는 것 같은 최근의 하인즈 워드의 사례를 보면, 그래도 우리 사회가 꽤 성숙한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언제부터 하인즈 워드를 ‘우리 한국인’으로 여겨왔었는지를 되묻고, ‘어머니가 헌신적으로 노력만 하면, 본인이 똑똑하기만 하면 그 모든 사회적 장벽들이 깨쳐지느냐’고 되묻는 자성들이 보이니 말이다. 그 많은, 다른 핏줄이 섞여 있는 이 땅의 거주자들에 대한 관심 한 마디를 잊지 않고 있으니 말이다. 하인즈 워드에 열광하는 미국인들을 보면서 한국에서는 결코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라는 아픈 자성을 하게 해주니까 말이다.